1800년 6월 26일, 俛庵 李㙖가 文集을 간행하는 일 등으로 南生員에게 보낸 편지
1800년 6월 26일에 俛庵 李㙖(1739~1810)가 文集을 간행하는 일 등으로 南生員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㙖는 먼저 자신의 며느리인 密陽孫氏(둘째아들 李永萬의 부인)가 사망한 데 대한 슬픔, 그리고 이에 대해 南生員이 위문편지를 보내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또한 海底의 山齋 丈席의 죽음에 따른 자신의 상실감 및 그와 舅甥 관계에 있는 南生員의 슬픔 마음에 대한 위로의 정을 전하였다.
金文學이 당한 일은 당초에 世道를 위해서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끝내 무사히 결말이 났다고 하면서, 심히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文集의 謄書 작업은 이제 막 끝이 났지만 印刊하는 작업은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뒤의 校本은 너무 지나치게 손을 본 것이라서 前本을 따르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논의가 다시 제기되었다고 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監察 조카가 방문하였을 때 이 편으로 南生員이 상세한 내용을 들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金文學의 의견도 같고 자신도 감히 異論을 제기하지 못해서 조만간 刊本을 中本으로 할 것이라고 하였다.
『易學啓蒙』에 관한 問目에 대해서는 자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南生員과 石田(漆谷에 있는 廣州李氏의 世居地)의 李持憲에게 질의하고자 했던 것인데 두 사람이 그다지 손을 대지 않으니 자신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다른 卷도 모두 中本을 따르고자 하는데 이것이 옳은 것인지 묻고, 南生員이 이에 관해 가르침을 달라고 하였다.
南生員의 딸 등이 걸핏하면 병에 걸리는 것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고, 元生의 어미가 순산한 사실에 대해 기쁜 마음을 전하면서 그녀가 딸을 낳았다고 해서 한탄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南生員의 從氏인 子皜 兄(誠齋 南漢皜)도 자신의 며느리인 密陽孫氏의 사망에 대해 위문편지를 보내줬던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뒷날 인편에 그에게 답장을 보낼 것이라고 하였다.
이 편지에 드러난 정중한 태도 및 南漢皜에 대한 언급으로 보아, 수신자는 損齋 南漢朝(1744∼1809)인 것으로 보인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