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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이우(李㙖)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00.4717-20140630.06352570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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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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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우, 김굉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00
형태사항 크기: 33.6 X 44.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소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0년 이우(李㙖) 서간(書簡)
1800년 2월 26일에 이우가 문집 간행 등과 관련하여 김문학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우는 유집을 교감하는 일을 지난겨울에 주곡에서 이미 끝냈는지라 정본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고 하였다. 그러나 상대인 김문학, 종질 및 이곳의 한두 사우 등이 너무 심하게 교감한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하면서, 상대를 만나 논의하고 싶어 베껴내는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고 하였다. 또 오로지 중본을 정본으로 삼고자 하지만 중본을 다시 살펴보니 표를 붙여 놓은 것이 모두 선배들이 교감한 것이고 간간히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모르는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상대가 먼 곳에 있고 감찰도 없어서 함께 상의할 만한 이도 없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00년 2월 26일, 俛庵 李㙖가 문집 간행 등과 관련하여 金文學에게 보낸 편지
1800년 2월 26일에 俛庵 李㙖(1739~1810)가 문집 간행 등과 관련하여 金文學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㙖는 遺集을 校勘하는 일을 지난겨울에 注谷에서 이미 끝냈는지라 淨寫하여 定本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고 하였다. 그러나 상대인 金文學, 從姪 및 이곳의 한두 士友 등이 너무 심하게 校勘한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하면서, 상대를 만나 논의하고 싶어 베껴내는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고 하였다. 또 오로지 中本을 定本으로 삼고자 하지만 中本을 다시 살펴보니 標를 붙여 놓은 것이 모두 선배들이 校勘한 것이고 간간히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모르는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상대가 먼 곳에 있고 監察도 없어서 함께 상의할 만한 이도 없다고 하였다. 正本이 未定인 가운데 베껴내는 일도 쉽지 않아서 걱정스러운데, 자신은 取捨를 결정할 만한 안목이 없고 景蘊 兄(容淵 金宗發)도 한결같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하면서 난감한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 일전에 仁同으로 가서 늙은 누이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院洞에 이르러 넘어져 다친 일을 언급하였는데, 안면과 다리를 다친 정도이지만 상태가 가볍지 않다고 하였다.
끝으로 校任 자리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鄕中 爭端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특히 여기에 개입하고 있는 수령의 태도, 上疏를 통한 자신 쪽의 대응 방식 등에 대해 상술하고 있다. 아울러 상대도 右令과 충분히 논의하여 傳敎의 취지를 지킬 방도를 도모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또한 다른 곳으로 移奉하여 영구히 폐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선책으로 여겨진다고 하면서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移奉의 대상은 鄕校의 神主나 기타 귀중한 물건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이 편지의 수신자인 金文學은 龜窩 金㙆(1739∼1816)인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遺集이란 1802년 가을에 義城 孤雲寺에서 목판으로 간행된 李象靖의 문집인 『大山集』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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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00년 이우(李㙖) 서간(書簡)

金文學 記室。
蘇湖李弟。謝狀。
丹陽時所惠書。卽時披玩。而失於偵便。未卽修
謝。每西望齎咨而已。卽蒙
盛廣不較。復承元月卄四日書。何其情摯而旨遠
也。合幷通看殆十回。不忍釋手也。仍審春暖。
仕履起居有相。一言契遇。儘有
天人嚮合之勢。雖在蓬蓽之中。寧不爲之殫冠而
增氣哉。況其霽潦寒暖之候。素定於中。則尤有
所慰仰出萬萬者然。其奈故山猿鶴之日以疏怨何哉。
遺集勘校之役。冬內已得了斷於注谷。意謂自此
可以淨寫爲定本。尊敎之勤。渠前後如此。兩得
從侄書。亦以此事爲言。此中亦有一二士友胎書。警
其勘校太甚。此必是大同公議。不謀而同者也。竊欲
奉以周旋。故姑停繕寫之役。而一以中本爲定。然更考
中本。則其中靑紅黑標。皆是先輩所勘。而間有
莫適所從之歎。兄旣在遠。監察又不在。無可
與商議者。方今春事將晩。正本未定。而許多卷
刊本。寫出又自不易。此事可極悶然。弟旣無眼目。
可以定取舍。而景蘊兄又一向斂退。不肯犯手。
以此尤有嚮風����之想也。弟跨冬涉春。粗得
支吾。日前往仁同。省老姊而歸。至院洞爲蹶
墜地▣。値地勢墝埆。破面傷足。雖不至內傷
之甚。而其視古人下堂傷足之憂。不啻倍蓰。
豈知此身無狀。垂老有此毁傷之咎哉。無以自
說於故人之前也。吾鄕鄕事。轉益乖張。校任已
逐出。而城主自封
傳敎之藏。其意蓋以
南中。必不以屬老黨。
故姑爲官主之狀。以塞
吾儕之口。政如兩人爭
訟。難於辦別。而都贖
之官司之意也。吾儕
親承
聖敎。其可爲官家贖
公之物乎。不知弼善
公能爲之。因言端
或章疏。可以稟達於
榻前。以取進止否。
兄亦與右令爛商。圖
所以保守
傳敎之道。千萬望也。
校任爲彼輩所流涎者久矣。
爭奪之習。匪今斯今。愚意則不如移奉他處之爲。永久無弊。然此非私自擅便之事。
亦與翰令爛議爲望。餘。紙盡呼倩。不宣。伏惟
下照。謹謝狀。
庚申二月卄六。弟。。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