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 2월 26일, 俛庵 李㙖가 문집 간행 등과 관련하여 金文學에게 보낸 편지
1800년 2월 26일에 俛庵 李㙖(1739~1810)가 문집 간행 등과 관련하여 金文學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㙖는 遺集을 校勘하는 일을 지난겨울에 注谷에서 이미 끝냈는지라 淨寫하여 定本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고 하였다. 그러나 상대인 金文學, 從姪 및 이곳의 한두 士友 등이 너무 심하게 校勘한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하면서, 상대를 만나 논의하고 싶어 베껴내는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고 하였다. 또 오로지 中本을 定本으로 삼고자 하지만 中本을 다시 살펴보니 標를 붙여 놓은 것이 모두 선배들이 校勘한 것이고 간간히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모르는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상대가 먼 곳에 있고 監察도 없어서 함께 상의할 만한 이도 없다고 하였다. 正本이 未定인 가운데 베껴내는 일도 쉽지 않아서 걱정스러운데, 자신은 取捨를 결정할 만한 안목이 없고 景蘊 兄(容淵 金宗發)도 한결같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하면서 난감한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 일전에 仁同으로 가서 늙은 누이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院洞에 이르러 넘어져 다친 일을 언급하였는데, 안면과 다리를 다친 정도이지만 상태가 가볍지 않다고 하였다.
끝으로 校任 자리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鄕中 爭端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특히 여기에 개입하고 있는 수령의 태도, 上疏를 통한 자신 쪽의 대응 방식 등에 대해 상술하고 있다. 아울러 상대도 右令과 충분히 논의하여 傳敎의 취지를 지킬 방도를 도모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또한 다른 곳으로 移奉하여 영구히 폐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선책으로 여겨진다고 하면서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移奉의 대상은 鄕校의 神主나 기타 귀중한 물건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이 편지의 수신자인 金文學은 龜窩 金㙆(1739∼1816)인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遺集이란 1802년 가을에 義城 孤雲寺에서 목판으로 간행된 李象靖의 문집인 『大山集』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