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7년 12월 11일, 俛庵 李㙖가 敬에 대해 사유한 내용을 피력하기 위해 損齋 南漢朝에게 보낸 편지
1797년 12월 11일에 俛庵 李㙖(1739~1810)가 敬에 대해 사유한 내용을 피력하기 위해 損齋 南漢朝(1744~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 전반부에서는 南漢朝와의 한 번의 만남으로 자신의 鄙吝한 마음이 한 번 사라지게 되었다고 하였고, 이어 南漢朝가 보내준 친필편지를 읽고서 그가 날마다 村의 秀才들과 함께 즐겁게 학문을 講討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李㙖 자신은 10월에 모두 몇 십 일 동안이나 永川과 慶州에 유람을 갔는데 돌아올 때 바람과 추위에 몸을 상해서 川沙翁(金宗德)의 장례식에 미처 참석하지 못했고 또 몇 십 일이 되지도 않아 后山翁(李宗洙)을 잃었다고 하면서, 애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피력하였다.
李㙖는 어제 서재에 앉아서, 敬 한 글자는 진실로 이 마음의 主宰이고 진실로 모든 聖人의 單傳이니 이 한 글자를 얻어서 의거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면 그것으로써 자신을 다스리고 그것으로써 사람을 다스릴 때에 어떤 상황에서도 그 마땅함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마침 생각했다고 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과거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치 다시 새롭게 이해한 것이 있는 것처럼 하였으니, 南漢朝가 보면 웃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子皜(誠齋 南漢皜)에게 『中庸』의 不睹와 不聞에 관하여 편지로 가르침을 준 일을 언급하였는데, 그가 睹와 聞의 해석에 있어 번잡한 폐단이 있었기 때문에 대략 가르침을 주었다고 하였다. 이는 『俛庵集』 卷6 「答南子皜 漢皜○丁巳」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추신에서는, 吐血症을 앓고 있는 從姪婦의 걱정스런 病氣에 대해 언급하고 아울러 愚山(尙州의 晉陽鄭氏 세거지)의 어떤 이가 벼슬살이에서 벗어나 기쁘게도 고향으로 되돌아 온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본 편지는 李㙖의 문집인 『俛庵集』 卷4에 「答南宗伯」이라는 제목으로 편집되어 실려 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