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6년 7월 4일에 崔思鎭이 근황을 전하고 꼭 방문해 달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俛庵 李㙖에게 보낸 편지
1796년 7월 4일에 崔思鎭이 근황을 전하고 꼭 방문해 달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봄에 아들인 崔濼이 廬江書院의 모임에서 李㙖의 근황에 대해 제법 상세하게 전해 주었고 지난번 際可인 俛齋 李秉運가 왔을 때에도 소식을 매우 자세히 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편지로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고 하였다. 요사이 무더위가 이렇게 혹심한데 李㙖가 계속해서 평안하게 지내고 있으며 膝下는 우환이 없는지 안부를 물었다. 늙은 자신은 窮廬에 외롭게 앉아서 좋은 근황은 전혀 없고 더운 철을 만나서 제대로 먹고 자지도 못하는 데다 집안의 우환거리가 한꺼번에 생겨나고 있다고 하면서 난감한 마음을 전하였다. 자세한 근황에 대해서는, 崔濼이 마침 일이 생겨서 더위를 무릅쓰고 가게 되었으니 서로 만나면 상세히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李㙖가 한 번 남쪽으로 내려와 자신을 방문하겠다고 단단히 약속하여 李㙖가 온다는 소식이 洛東江 일대에 퍼졌다고 하는데, 끝내 李㙖가 오지를 않으니 이루 말할 수도 없을 만큼 안타깝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崔濼이 당초에는 先祖의 丙子年 때의 일 때문에 芝崖에 가고자 하였으나 仲孫의 병세가 뜻밖에 심각해졌다가 다행히 나아가고 있지만 이번에는 崔濼이 또 腫氣를 앓고 있기 때문에 직접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에 이렇게 심부름꾼을 보내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두 통의 편지는 자신이 전에 써 놓은 것인데 전에 인편을 얻어 보내지 못하고 이제야 부쳐 보내게 되었다고 하면서, 심부름꾼이 돌아오는 편으로 안부편지를 달라고 하였다.
崔思鎭은 본관이 慶州, 字가 靜而이다. 옻골에 거주하였으며, 百弗庵 崔興遠의 조카이다. 그는 李志和의 막내 사위이므로, 李光靖에게는 처남매부지간이 되고 李㙖에게는 고모부가 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