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4년 11월 6일, 損齋 南漢朝가 여행 중의 안부를 묻고 上疏와 관련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俛庵 李㙖에게 보낸 편지
1794년 11월 6일에 損齋 南漢朝(1744~1810)가 여행 중의 안부를 묻고 上疏와 관련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본 편지의 안부 부분을 볼 때 李㙖가 이 시기에 東萊 지역을 여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南漢朝가 9월에 편지를 보냈으나 李㙖가 남쪽으로 내려간 지 이미 오래된 상황이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李㙖가 그쪽 關防의 形勝을 두루 유람하고 임진왜란 때의 유적을 보고서 心目을 넓히는 등 여행의 성과가 필시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더구나 東萊府는 南漢朝 자신의 先祖께서 駐節하셨던 곳인데 정작 자신은 그곳에 내려가 先祖가 펼치셨던 政事의 자취를 민간에서 탐문하여 집안에서 전할 遺事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만큼, 李㙖의 여행이 매우 부럽다고 하였다. 衰年의 몸으로 長途에 지쳤을 줄로 생각되는데, 언제 여행에서 돌아오며 건강은 나빠지지 않았는지 안부를 물었다.
堂內의 극심한 우환거리로 인해 마음고생하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간략히 전하고, 지난봄에 있었던 上疏에 관한 논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즉 南漢朝는 지난봄에 上疏에 대한 논의가 다시 제기되어 歲前에 설행하자는 논의가 있다고 하는데, 이 일이 지연되는 것은 吾黨의 큰 걱정거리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경솔하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을 피력하였다. 내년 봄 국가의 경사가 있은 뒤에 천천히 신중하게 처리하여 사단이 생기지 않기를 기다려서 처리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 이번에는 이전의 형식을 탈피하여 鄕會와 道會를 통해 재삼 정중하게 하여 任員을 잘 선발한 뒤에야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上疏 운운한 대목은 金縢書와 관련한 思悼世子 伸寃 문제에 대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내용은 미상이다.
南漢朝는 끝으로 여러 장로들이 평소에 정립해 놓았던 관점이 있을 것이지만 자신의 의견을 李㙖에게 감히 숨기지 못하여 말했다고 하면서, 李㙖의 의향이 어떠한지 물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