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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류태조(柳台祚)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793.4717-20140630.008125703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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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태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작성시기 1793
형태사항 크기: 35.3 X 45.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하회 풍산류씨 화경당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93년 류태조(柳台祚) 서간(書簡)
1793년 1월 3일에 柳台祚가 三從叔의 사건을 전하고 仲父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三從叔의 참변과 부인 김씨의 자살, 16세 아들 柳井祚가 上言한 일을 전하였다. 新伯이 제수된 일을 축하하며 仲父의 편지를 그 편에 전함을 알렸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793년 1월 3일에 柳台祚가 三從叔의 사건을 전하고 仲父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793년 1월 3일에 柳台祚가 三從叔의 사건을 전하고 仲父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지난 겨울 집으로 돌아온 이후 크고 작은 우환이 잇달았는데 그 중에 三從叔의 참변이 일어났음을 전하였다. 삼종숙의 아내인 김씨는 혈서를 써 놓고 자살하였으며 16세 어린 아들이 5일 동안 伏閤했는데 임금께 주달되지 못하자 새해 설날 거둥을 기회로 擊錚을 하여 호소한 일을 전하였다.
이 사건은 柳台祚의 삼종숙 柳弘春에게 있었던 일로 그는 안동부의 환곡 5斗를 기한 내에 납부하지 않아 형을 받은 후 죽었다. 이를 분통하게 여긴 부인 김씨가 보름 뒤에 잇달아 자살하였고 이 때문에 16세 아들 柳井祚가 서울로 올라가 上言하였다. 이 일은 2월에 부인 김씨가 정려를 받고 안동부사는 유배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新伯이 제수된 일을 지적하며 黨의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여기며 상대의 일도 잘 될 것으로 추측하였다. 仲父의 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부치지 못하고 있다가 新伯의 인편을 통해 전함을 알렸다. 추록으로 直長大父에게 따로 편지 쓰지 못한다고 하였다.
문중에서는 류태조 및 그의 동생 고성군수 柳喆祚병조판서를 역임한 사촌 柳相祚 등이 앞장서서 義庄所를 설립하였다. 돈과 곡식을 마련하여 세금을 제때 내지 못하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발급인 柳台祚는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나중에 柳台佐로 개명하였으며,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에 문과에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鶴棲文集』 20권 10책이 전한다. 류이좌는 관직 생활을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와 향촌 활동과 문중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향촌의 여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93년 류태조(柳台祚) 서간(書簡)

獻歲發春。伏惟
旅中體度。益膺康福。仰慰區區
無任下忱。侍生。客冬還巢之後。連以
大小憂虞之端。無一日安坐之時。又遭
三從叔慘變。此則千古所未聞所未有之
事也。魂驚魄落。直欲攢地以入而已。
叔母金氏。絶食自誓。且作血字。申託諸
宗復讐之語。仍至自盡。十六歲穉哀。抱此西上。伏閤五日。未蒙
登聞。今正朝擧動之時。擊錚鳴
寃。姑無發落處分。這間悲遑罔措之狀。如何盡達。新伯台監除命。實
是吾黨之幸。栢悅之忱。已無可論。
而執事之行。亦必無齟齬之歎。欣慰
尤極難量。仲父書。歲前上來時。持來以置。而無便未付。適因新伯便。謹此
呈上。
領納如何。餘不備。
伏惟
下察。謹再拜。上候狀。
癸丑正月初三日。侍生。柳台祚。再拜。

直長大父。近以此事。淟汨憂遑。故未修候儀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