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2년 3월 6일, 俛庵 李㙖가 위문편지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고모부에게 보낸 편지
1792년 3월 6일에 俛庵 李㙖(1739~1810)가 위문편지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고모부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㙖는 먼저 지난해 12월에 뵈었던 이후로 간절하게 가졌던 상대에 대한 그리움, 현재 늦봄이 되어 가눌 수 없이 커진 孤露之感(참고로 李㙖의 모친인 義城金氏는 1756년에, 부친 李光靖은 1789년에 사망하였음), 집사람의 忌日(李㙖의 부인인 全州李氏는 1790년 3월 5일에 사망하였음)을 막 지내고 난 뒤의 상실감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상황에 관한 상대의 위문편지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다만 편지를 읽고서 상대가 평안하게 지내고 있지 못하다는 점과 마을에 돌림병의 기운이 침범하였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상대의 자제들이 평안하게 지내고 있고 상대가 다시 손자를 본 데 대해서는 기쁜 마음을 전하였다.
李㙖 자신은 신체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심적인 측면에서는 죽은 이나 다름없다고 하였으며, 초봄에 기승을 부렸던 돌림병으로 이웃사람들까지 사망하는 등 그때의 상황이 매우 위태로웠으나 지금은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더라도 다행히 전염병 기운이 조금은 잦아들었다고 하였다. 이어 喪故가 거듭된 뒤에 亡妻의 初忌를 막 지내고 나니, 아내를 잃은 슬픈 마음이 가볍지 않다며 다시 한 번 喪妻한 데 따른 비통한 심정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편지를 통해서 상대의 아들이자 자신의 사촌이 자신을 방문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감사하기는 하지만 돌림병이 기승을 부리는 이때는 집을 나올 시기가 아니라고 하였다.
발급인 李㙖의 자는 穉春, 호는 俛庵, 본관은 韓山이다. 아버지는 小山 李光靖(1714~1789)이고, 어머니는 鶴峯 金誠一의 후손인 竹所 金良鉉의 딸이다. 大山 李象靖(1711~1781)의 조카로써 그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영남유생이 사도세자를 신원하기 위하여 상소하였을 때 疏首가 되었다가 古今島에 유배되었었고, 유일로 參奉에 제수되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