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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이우(李㙖)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790.4717-20140630.0635257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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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우, 최사진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90
형태사항 크기: 31.5 X 46.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소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90년 이우(李㙖) 서간(書簡)
1790년 2월 25일, 부친상 중인 이우최흥원에 대한 분황례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칠계에 거주하고 있는 고모부인 최사진에게 보낸 편지이다. 분황 운운한 대목은 최사진의 백부인 백불암 최흥원이 이해에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경연참찬관에 증직된 일을 가리킨다. 이우는 달포 전에 전염병에 걸렸던 소숙의 상을 당하였고 그 시기를 즈음하여 전염병에 대한 근심이 깊던 상황에서 아들 이영만의 부인인 밀양손씨가 손자 이수삼을 낳았으며 늙은 마누라가 숙병을 앓는 가운데 돌림감기에 걸렸다고 하는 등 집안에서 생긴 여러 일들에 대해 전해 주었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최흥원의 분황례에 참석할 수 없을 듯하다는 얘기를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790년 2월 25일, 父親喪 중인 俛庵 李㙖崔興遠에 대한 焚黃禮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漆溪에 거주하고 있는 고모부인 崔思鎭에게 보낸 편지
1790년 2월 25일에 父親喪 중인 俛庵 李㙖(1739~1810)가 崔興遠에 대한 焚黃禮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漆溪에 거주하고 있는 고모부인 崔思鎭에게 보낸 편지이다.
1789년에 小山 李光靖이 사망하였으므로, 본 편지는 父親喪 중에 李㙖가 보낸 것이다. 喪中에 새해를 맞아서 崔思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던 차에 뜻밖에 심부름꾼이 와서 崔思鎭의 편지를 받게 되니 아련히 세상 밖의 드문 소식을 얻은 듯했다고 하였다. 편지를 읽고서 崔思鎭이 건강하고, 崔思鎭의 돌아가신 伯父에게 追贈하는 은전이 내려져서 焚黃이 머지않아 거행될 것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니 매우 감격스럽고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焚黃 운운한 대목은 崔思鎭의 伯父인 百弗庵 崔興遠이 이해에 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經筵參贊官에 贈職된 일을 가리킨다. 다만 季氏를 지난겨울에 잠깐 만났을 때 너무 일찍 노쇠한 것을 보고 염려했는데, 눈의 백태와 胸痛을 심하게 앓는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매우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 李㙖의 고종사촌인 崔濼(崔思鎭의 아들)이 科擧를 보러 간 일에 대해서는 성과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기도 하였다.
李㙖는 달포 전에 전염병에 걸렸던 小叔(李㙖의 庶叔인 李式靖)의 喪을 당하였고 그 시기를 즈음하여 전염병에 대한 근심이 깊던 상황에서 아들 李永萬의 부인인 密陽孫氏가 손자 李秀三을 낳았으며 늙은 마누라(全州李氏)가 宿病을 앓는 가운데 돌림감기에 걸렸다고 하는 등 집안에서 생긴 여러 일들에 대해 전해 주었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崔興遠의 焚黃禮에 참석할 수 없을 듯하다는 얘기를 전하였다.
추신에서는, 李光靖의 글을 수습하는 일과 관련하여 崔思鎭 쪽에 보관되어 있는 왕복 편지를 보내달라고 부탁하였고 廓 兄에게도 편지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으니 만나거든 같은 내용으로 부탁해 달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90년 이우(李㙖) 서간(書簡)

漆溪 侍執事。
蘇湖 姻姪 孤哀子答疏上。

稽顙言。哀苦逢新。所以瞻仰於
軒下者。尤切。謂外使至。伏承
下疏。怳然如得世外稀音。急拆疾讀。仍伏審
靜養體氣康吉。
先伯父尊丈
貤贈之典。降自九天。焚黃棹楔。指日將擧。雖此罪戾之蹤。其
爲感慰。又豈容言語盡喩耶。荀子所謂昊天不忘者。於今可信
矣。但季氏尊兄。客冬暫奉。固已慮其衰相太早。今承
眼眚胸痛之苦。區區貢念。又非尋常之比也。從君知▣▣
之行。合下家運旣亨。能做好夢以待否。小兒輩皆能無事
否。面面不能忘。。家禍未艾。月前復遭小叔喪。摧痛之懷。不能
自裁。以其變出時令。故後慮方深。而適於其時。有仲子婦産
憂及兒少之病。繼以老荊宿病中添却輪感。愁惱未見開
霽日。非但感時哀疚而已。奈何奈何。兒子輩雖在制中。豈
敢自後於賓客之末。而憂故如右。末由抽出。自餘門內。絶少無
故人。不知臨時能有進去者否。餘。燈下倩呼。荒迷不次。謹疏。
庚戌二月二十五日。姻姪孤哀子。李㙖。疏上。

方欲收拾文字。而不敏恐不能竣是事。
貴處往復書疏。或有收藏者。因便投寄。以爲謄寫後還完之。
如何。解顔郭兄許。亦欲裁疏而未及。逢場亦以此意奉托。至望。
從氏尊兄自京還侍否。或意爲是謁聖未還耳。前此伏承例問外。別紙致
意甚勤。而罪戾不敏。不能預作答疏以竢。今此急卒。難於倩書。又闕
謝儀。甚非所以仰答哀問之盛意也。
季氏兄前。亦不能別狀。未可回照此紙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