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년 2월 25일, 父親喪 중인 俛庵 李㙖가 崔興遠에 대한 焚黃禮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漆溪에 거주하고 있는 고모부인 崔思鎭에게 보낸 편지
1790년 2월 25일에 父親喪 중인 俛庵 李㙖(1739~1810)가 崔興遠에 대한 焚黃禮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漆溪에 거주하고 있는 고모부인 崔思鎭에게 보낸 편지이다.
1789년에 小山 李光靖이 사망하였으므로, 본 편지는 父親喪 중에 李㙖가 보낸 것이다. 喪中에 새해를 맞아서 崔思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던 차에 뜻밖에 심부름꾼이 와서 崔思鎭의 편지를 받게 되니 아련히 세상 밖의 드문 소식을 얻은 듯했다고 하였다. 편지를 읽고서 崔思鎭이 건강하고, 崔思鎭의 돌아가신 伯父에게 追贈하는 은전이 내려져서 焚黃이 머지않아 거행될 것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니 매우 감격스럽고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焚黃 운운한 대목은 崔思鎭의 伯父인 百弗庵 崔興遠이 이해에 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兼 經筵參贊官에 贈職된 일을 가리킨다. 다만 季氏를 지난겨울에 잠깐 만났을 때 너무 일찍 노쇠한 것을 보고 염려했는데, 눈의 백태와 胸痛을 심하게 앓는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매우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 李㙖의 고종사촌인 崔濼(崔思鎭의 아들)이 科擧를 보러 간 일에 대해서는 성과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기도 하였다.
李㙖는 달포 전에 전염병에 걸렸던 小叔(李㙖의 庶叔인 李式靖)의 喪을 당하였고 그 시기를 즈음하여 전염병에 대한 근심이 깊던 상황에서 아들 李永萬의 부인인 密陽孫氏가 손자 李秀三을 낳았으며 늙은 마누라(全州李氏)가 宿病을 앓는 가운데 돌림감기에 걸렸다고 하는 등 집안에서 생긴 여러 일들에 대해 전해 주었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崔興遠의 焚黃禮에 참석할 수 없을 듯하다는 얘기를 전하였다.
추신에서는, 李光靖의 글을 수습하는 일과 관련하여 崔思鎭 쪽에 보관되어 있는 왕복 편지를 보내달라고 부탁하였고 廓 兄에게도 편지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으니 만나거든 같은 내용으로 부탁해 달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