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7년 2월 그믐날에 막내 숙부 李光靖이 여러 소식을 전하기 위해 두 조카에게 보낸 편지
1787년 2월 그믐날에 막내 숙부 李光靖이 여러 소식을 전하기 위해 두 조카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조카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려고 한 것이 오래되었으나 편지지를 구하기 어려웠고 병도 발작하여 그러지 못하였다고 했다. 지난번에 宗姪의 편지를 받았으나 확실한 인편을 얻지 못하여 또한 답장을 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방금 市便을 통하여, 寓居하고 있는 조카들이 그럭저럭 평안하게 지내고는 있으나 이사하는 일 때문에 고생이 더 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춘궁기에 먹고사는 대책으로 부심하고 있는 李{土+允}[李憲靖의 아들]이가 걱정스럽다고 하였고, 牧이는 여기서 고삐 풀린 말처럼 날마다 놀기만을 일삼고 있으므로 걱정스럽다고 하면서 지금 나가게 되었으니 혹여 여기에 있을 때보다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하였다. 아들을 낳는 것도 어렵지만 아들을 가르치는 것이 더욱 어렵다고 하면서, 교육의 성패가 가문의 存亡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니 크게 마음이 쓰인다고 하였다. 이어 마마의 유행과 관련하여 川前叔 집안과 건넛마[越村]의 소식을 전하였고, 吳山에 있는 딸이 이곳에 온 지 근 1달이 되어 가는데 병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나 조카들을 보지 못하는 데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래 병이 없어졌으나 厭食과 피곤증을 겪으면서 근근이 버텨내고 있다고 하였으며, 또 曾孫을 봤는데 頭角이 훌륭하여 몹시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3월 忌祭祀가 닥쳐왔는데 宗孫이 출타한 상황이니 자신의 근력이 허락한다면 제사에 참석해야 하겠지만 기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였다. 毛老洞[李象靖과 李光靖의 조부인 李碩觀의 묘소가 위치한 곳]에서의 墓祀는 산 아래에서 거행하는 것이 편리하고 좋다고 하면서, 날짜 전에 미리 나아가서 설행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다만 산 아래가 깨끗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別檢이 떠나간 뒤에 그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으니, 매우 답답하다고 하였다. 새로 건립된 祠院과 里社, 影堂에 도착한 監營의 關文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는데, 아마도 정부의 祠宇에 대한 禁制令이 그 관문에 실려 있었던 듯하다. 새로운 수령이 부임한 지 이미 3일이 되었다고 하면서, 그에 관한 별다른 소식은 없으며 이름은 申益彬이라고 하였다. 寓居하고 있는 李垍[李後靖의 아들]가 집안에 있으면서 정신없이 지내는 것과 비할 수 없을 만큼 독서에 열중하여 학업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시각을 아껴 공부하라고 당부하였다.
申益彬이 安東府使로 임명된 것이 1787년 2월이므로, 이 편지의 발급연도도 이해일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내용으로 보건대 발신인은 小山 李光靖, 수신인은 李{土+允}과 李垍으로 보인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