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7년 3월 13일, 俛庵 李㙖가 名帖과 관련하여 虎溪書院의 院長에게 보낸 편지
1787년 3월 13일에 俛庵 李㙖(1739~1810)가 名帖과 관련하여 虎溪書院의 院長에게 보낸 편지이다.
星州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정부에서 조사하는 일이 급박하게 이루어져서 손을 쓸 방도를 모를 지경이라고 하였다. 公議로 볼 때에 이곳의 士林이 수수방관해서는 안 되겠기에 다른 사람을 보내려고 하였으나 미루고 기꺼이 하지 않을 우려가 있을까봐 李㙖 자신이 魯林書院의 대표가 되었다고 하면서, 虎溪書院 측에서는 儒生들을 차출하여 이미 출발시켰는지 물었다.
李㙖는 오늘 출발하려고 하지만 名帖을 거두어 보내야 하는데 기한이 이미 다 되었다고 하면서, 난감한 마음을 전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面의 경우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도착해서 채워서 써 넣으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하면서, 虎溪書院 측은 어떻게 할지 물었다. 虎溪書院 측에서 갑자기 名帖을 수합하기 곤란하다면 지난날 玉山書院으로 通文을 발송하였을 때 수합하였던 名帖의 本草가 서원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니 그것을 조사해 내서 부쳐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名帖을 보내는 것이 유생들이 가는 것보다 늦어지게 된다면, 따로 심부름꾼을 시켜서 보내주는 것도 무방할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이 일은 道內 士林의 환난에 관련된 일이라고 하면서 소홀히 하지 말기를 당부하였다.
발급인 李㙖의 자는 穉春, 호는 俛庵, 본관은 韓山이다. 아버지는 小山 李光靖(1714~1789)이고, 어머니는 鶴峯 金誠一의 후손인 竹所 金良鉉의 딸이다. 大山 李象靖(1711~1781)의 조카로써 그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영남유생이 사도세자를 신원하기 위하여 상소하였을 때 疏首가 되었다가 古今島에 유배되었었고, 유일로 參奉에 제수되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