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2년 10월 8일, 晦屛 申體仁이 직접 방문하여 문집 편찬 작업에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
1782년 10월 8일에 晦屛 申體仁(1731~1812)이 직접 방문하여 문집 편찬 작업에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가을에 한 번 가서 几筵에서 곡을 하고 遺稿를 校勘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자 하였으나, 괴상한 우환이 생겨서 몸을 빼낼 여가가 없었던 관계로 멀리 바라보며 탄식만 하였으니 부끄럽고 죄송스런 마음만 간절할 따름이었다고 하였다. 일전에 遞傳으로 편지를 받고서 喪中에 조섭하시는 상대의 체후가 근래 조금 안정되었으며 遺稿를 편집하고 베끼는 일도 모두 두서를 잡았음을 대략 살피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위안이 되고 다행스러웠다고 하였다. 申體仁 자신은 이미 제때 几筵에 나아가 곡하지 못했던 데다 遺稿를 베끼는 일을 조금도 돕지 못하였으니, 더할 수 없이 심하게 스승의 恩德을 배반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끝으로 생질 집안에서 새사람을 맞이하는 일이 있음을 알았으나 또한 가서 보지도 않았으니, 매우 슬프고 부끄럽다고 하였다.
申體仁은 본관이 鵝洲, 자가 子長, 호가 회병이다. 그는 九思堂 金樂行, 剛窩 任必大, 大山 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저서에 문집이 있다. 이 편지에서 遺稿란 곧 申體仁의 스승인 李象靖의 문집을 말하는데, 『大山集』은 1782년 장례 후 李象靖의 아들인 李埦이 門下의 諸賢과 修寫함으로써 그 간행 작업이 시작되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