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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2년 류이좌(柳台佐)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782.1100-20140630.00812570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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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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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이좌, 류상조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782
형태사항 크기: 33.5 X 44.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하회 풍산류씨 화경당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82년 류이좌(柳台佐) 서간(書簡)
1782년 6월 28일, 류이좌가 중앙관직에 있으면서 향안 등재를 비롯한 향촌의 여러 가지 사정에 대한 입장과 자신의 말과 감영의 고마(雇馬)를 교환하길 바라는 내용을 담아 류상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이좌는 향안에 뇌물을 주고 올린 것이 28집인데, 이병옥도 뇌물을 주고 향안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떠돈다고 전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중길이 탕건(宕巾)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본인의 것도 낡아서 구입하는 것이 어떠할지 물었다. 온혜의 사돈이 요청한 비장첩은 성책하여 보내는 것이 어떠한지도 알아보았다. 추록으로 류이좌가 타고 가려는 말의 등창이 낫지 않아 다른 말을 사고 싶지만 힘들 것 같다며 상대방에게 감영의 고마(雇馬)와 교환하고 싶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782년 6월 28일, 柳台佐가 중앙관직에 있으면서 鄕案 등재를 비롯한 향촌의 여러 가지 사정에 대한 입장과 자신의 말과 감영의 雇馬를 교환하길 바라는 내용을 담아 從兄 柳相祚에게 보낸 편지
1782년 6월 28일, 柳台佐(1763-1837)가 중앙관직에 있으면서 鄕案 등재를 비롯한 향촌의 여러 가지 사정에 대한 입장과 자신의 말과 감영의 雇馬를 교환하길 바라는 내용을 담아 從兄 柳相祚(1763-1838)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류이좌는 상대에게 짧은 안부 인사를 전하고, 본인은 평소처럼 중앙에서 관직생활을 하는 가운데 설사 증세가 심해져서 매우 고민스럽다고 하였다. 鄕案에 뇌물을 주고 올린 것이 스물 여덟 집이며, 李秉玉도 감영에 출입하여 뇌물을 주고 향안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무성한데, 이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라고 하였다.
상대방은 金 生의 小紙와 翼贊 아재의 小紙를 보고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했는데, 김생이 여러 날 한양에 머무르는 것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신중해야 하며 비변사의 題辭가 있어도 시행하지 않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다. 重吉이 편지에서 宕巾을 빌려달라고 했으나, 본인의 탕건 역시 낡아서 盧翼燁에게 탕건을 보여 달라고 하니 가격이 10兩이라는데, 구입할지의 여부도 물었다. 溫惠의 사돈이 요청한 비장첩은 성책하여 보내는 것이 어떠한지도 알아보았다. 마지막에 간략하게 인사하는 것으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편지에는 추록도 있는데, 류이좌가 타고 가려는 말의 등창이 오래도록 낫지 않으니, 만약 이번에 고향으로 돌아갈 때 다시 아픈 것이 심해지면 버리게 될까봐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말을 팔고 다른 말을 사고자 하나 매매가 모두 뜻대로 되기가 어려울 듯하니, 상대방에게 감영의 雇馬 가운데 잘 달리는 것과 서로 교환하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편지의 내용 가운데 鄕案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것은 양반의 명부이다. 향안에 오르면 자자손손 양반 행세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입록을 둘러싸고 많은 갈등이 야기되었다. 심지어는 鄕任을 매매하는 폐단까지 발생해 영조·정조 이후 향안 수정이 수령들의 합법적인 수탈방법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발급인 柳台佐는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으로,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 문과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鶴棲文集』 20권 10책이 전한다. 수급인 류상조의 자는 爾能이고, 호는 逸愚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이며, 조부는 柳澐이다. 아버지는 柳宗春이며, 생부는 柳海春인데, 류이좌의 아버지와 형제 사이이다. 류이좌류상조는 개인적인 고민, 문중 활동과 관련된 일, 향촌의 여러 가지 사안 등에 대해 함께 논의하며 주고받은 편지가 상당수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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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782년 류이좌(柳台佐) 서간(書簡)

兄主前。上修書。謹封。
奴輩便修書。已爲
關聽矣。小雨乍過。未審此際
調候更若何。賀班之行。果以初二日
登程耶。仰切翹企之忱。從弟姑依直狀。
而泄症更添。苦憫奈何。金生昨日發去云
耶。果爲發去耶。俄者自泮村。有所通示。
而此說曾所及聞者。然不可準信。故未之提
告。而卄八家云云之中。李秉玉出入營中。
因緣納賄。還錄鄕案之說。非一非再。
所言又如此。所謂秉玉似卄八中一也。
此事決不可輕施。兄主想必已爲商量。
而覽此金生小紙及翊贊叔小紙。槩可
黙諒矣。金生之多日滯京。未知何事。而
末又以此爲告。亦未知緣何。而大體卽不可
不持重。設有備局題辭。姑勿
施行如何。重吉書中。有宕
巾仰請蒙許之事云。而從弟
宕巾亦爲弊之。故二件見樣
相約於盧翼燁處。而決價
十一兩云。此或
見施耶。溫惠
李査所請裨
將帖。成貼以
送如何。李應敎
李��姜世揆
又爲上來云矣
餘。不備。伏惟
壬寅六月卄八日。從弟。台佐。再拜。

從弟所騎之鬣。
背瘡久不差。
此鬣所行。可謂
百金亂貿。而
今若騎去於
還鄕之時。更
爲添傷。卽
廢棄可慮
云。故欲爲斥賣
以買他鬣。而
買賣俱難
如義。貴營雇
馬中。善步者。
相換以去。卽似
爲便好。此鬣若
置雇馬之中。卽
必爲優等。果有
可合相換者。今
番行次時。把來
之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