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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류이좌(柳台佐)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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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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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이좌, 류상조
작성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형태사항 크기: 24 X 36
장정: 낱장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하회 풍산류씨 화경당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년 류이좌(柳台佐) 서간(書簡)
김해부사로 재임 중인 류이좌가 종형 류상조에게 ‘묘변’ 문제로 감영에 가게 되면 소식을 전해주겠다는 내용의 편지이다. 감영에 글을 올린 일은 이문씨로부터 전해 들어 대략 그 대강을 알게 되었으나 전에 여러 차례 감영에 갔기에 이미 설명을 다하여 남은 것이 없으니 지금 비록 다시 가더라도 무슨 별반 말할 것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류이좌는 감영에 가려고 했으나 김해가 수재가 더욱 심한 읍으로, 백성들의 하소연이 답지하고 災政이 시작되어 십 여일 안에 몸을 빼기가 어려울듯하며, 속도를 내더라도 20일 사이에 가는 것이 가능한데, 글을 올린 유생이 감영아래 머물고 기다리는 것은 지나치다고 하였다. 유생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나, 반드시 呈狀을 올리도록 하고 곧바로 돌아오라고 하였다. 조만간 감영에 이르러 다시 소식을 듣게 되면 마땅히 보고 드리겠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金海府使로 재임 중인 柳台佐柳相祚에게 廟變 문제로 監營에 가게 되면 소식을 전해주겠다는 내용의 편지
金海府使로 재임 중인 從弟 柳台佐(1763~1837)가 從兄 柳相祚(1763~1838)에게 ‘廟變’ 문제로 監營에 가게 되면 소식을 전해주겠다는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의 서두는 안부인사로 시작된다. 류이좌는 상대방이 두 번 보내준 편지로 매우 위로가 되었으며, 하물며 건강이 한결같고 各房도 고르게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 기쁘고 다행스러우나 科擧보러 간 젊은이들은 무사히 돌아왔는지 궁금해 하였다. 류이좌는 병의 상태가 예전 그대로이고, 內行도 무사히 도착하였으며, 景三과 權 生員이 병으로 토사하던 것이 조금 덜하여 다행스러우나, 괴로운 일이 많아 답답하다고 하였다.
監營에 글을 올린 일은 爾文씨로부터 전해 들어 대략 그 대강을 알게 되었으나 전에 여러 차례 감영에 갔기에 이미 설명을 다하여 남은 것이 없으니 지금 비록 다시 가더라도 무슨 별반 말할 것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重玉[三從弟]이 운운한 것은 삼가 지나친 염려인 듯하나 만약 중옥으로 행사의 계제를 삼는다면 반드시 狀聞하여 拿處할 것으로 보았다. 묘위천동을 조사한 이후에 僞關을 조사하는 것이 옳으나 혹 묘위천동을 조사하지 않고 단지 위관을 조사한다면, 漢絅과 對擧하는 뜻이라고 하였다.
류이좌는 감영에 가려고 했으나 金海가 수재가 더욱 심한 읍으로, 백성들의 하소연이 답지하고 災政이 시작되어 십 여일 안에 몸을 빼기가 어려울듯하며, 속도를 내더라도 20일 사이에 가는 것이 가능한데, 글을 올린 儒生이 감영아래 머물고 기다리는 것은 지나치다고 하였다. 반천리 밖에 관직에 묶여 있는 사람이 事故의 유무를 알아서 계획할 수 없으며, 만약 災政이 순조롭게 끝나면 비록 며칠 뒤라도 출발하는 것이 가능하나 혹 물려지는 폐단이 있다면 어느 날 몸을 내는 것이 가능한지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대개 災政은 백성과 나라의 일 년의 큰 계획과 관련이 있는데, 각 면을 단속할 때 내버려 두면 낭패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儒生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나, 반드시 呈狀을 올리도록 하고 곧바로 돌아오라고 하였다. 조만간 감영에 이르러 다시 소식을 듣게 되면 마땅히 보고 드리겠다고 하였다.
지난번 편지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조항은 유념하지만, 관청에 정해져 내려온 액수가 이미 800여 냥을 넘었고, 사용할 곳은 점점 더해지고 많아져 장차 어느 때 끝날지 알지 못하겠으며, 마땅히 차례대로 도모할 뿐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에는 매우 괴로워 예를 갖추지 못한다고 했으며, 추록에는 上枝 從兄의 喪事는 매우 아프고 슬프다고 하였다. 편지에는 연월일이 적혀있지 않지만, 류이좌김해부사로 재임 시기인 1820~1822년에 보낸 것이다.
발급인 柳台佐의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으로,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 문과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수급인 류상조의 자는 爾能이고, 호는 逸愚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이며, 조부는 柳澐이다. 아버지는 柳宗春이며, 생부는 柳海春인데, 류이좌의 아버지와 형제 사이이다. 1794류이좌와 함께 문과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저서로 『燕行錄』과 『逸愚集』이 전한다.
풍산류씨 화경당에는 류이좌가 개인적인 고민, 문중 활동과 관련된 일, 향촌의 여러 가지 사안 등으로 류상조와 주고받은 편지가 상당수 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이미지

원문 텍스트

○○년 류이좌(柳台佐) 서간(書簡)

兄主前。上謝書。
重溪書答書。鄙義殊未安。而諸議已定。亦且奈何。
兩便下狀。殊慰下懷。況審調候一樣。各房均安。尤用欣
幸。而少輩之多赴科行。其果
無事往還耶。從弟。病狀姑依。
內行穩泊。而景三與權生俱
病吐瀉。今幸少可。而擾惱
多端。是憫。營題事。因爾文
氏所傳。畧聞梗槪。而前者數
次營行。已爲說盡無餘。 今雖更
往。有何別般說話耶。仲玉云云。
恐似過慮。若以仲玉。爲行査之
階。卽其必狀聞拿處。豈有是理。
廟變行査而後。僞關可以行査。而
如或不査廟變。只査僞關。卽是
對擧漢絅之義也。營門當此
臨歸之時。恐
無此等過慮。
營行近卽爲之。
而本邑以水災
尤甚之邑。民訴
沓至。災政方
始。十餘日內。
似難抽身。雖
速圖。 念間。
可以作行矣。
程文儒生之
留待營下。
過矣過矣。半
千里外。縻官之人。
何以知事故之有
無。而如是作計
耶。災政若順成。卽
雖數日後。可以離發。
而如或有點退之弊。
卽不知何日可以抽身。
蓋此災政大關於民
國一年之大計。當此各
面團束之時。何可抛置。
而不爲照檢。以致無限
狼狽耶。儒生未之誰某。而必令呈
狀。卽還如何。早晏到營後。有
可聞消息。亦當仰報矣。前書
俯示諸條當留念。而目今
官廳加下。已過入百餘兩。
而用處漸加浩多。將不知
稅駕何地。第當次第
圖之耳。餘。劇擾。不備
禮。重切翼翼。從弟。台佐。再拜。

上枝從兄喪事。痛悼無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