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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류의목(柳懿睦)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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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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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의목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형태사항 크기: 20 X 40.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하회 풍산류씨 화경당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년 류의목(柳懿睦) 서간(書簡)
류의목이 부제의 절차를 행하려 할 때 의심하는 점을 묻는 편지이다. 분향과 강신은 모두 재배의 절차가 있으나, 요즘 사람들은 분향과 강신을 함께 행하고는 단지 한 번만 재배하는데, 이는 『주자가례』와 서로 어긋난다고 하였다. 류의목은 애초에 각각 재배하려 했으나, 우선은 시속을 따랐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자가례』에 없는 것이니, 『주자가례』를 따라 행하는 것이 어떨지 물었다. 부제 때 요즘 사람들은 상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부제에 참석하지 않고, 다만 제사 지내는 줄 밖에서 부복하는데, 이것 또한『주자가례』에는 근거가 없다고 하였다. 류의목은 요즘 사람들이 상복을 핑계대고 부제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매우 근거 없는 일이며, 모레 부제에 반드시 상복을 입고 아헌을 올릴 것이니, 시속을 놀라게 하는데 이를 것이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柳懿睦이 祔祭의 절차를 행하려 할 때 의심하는 점을 묻는 편지
柳懿睦(1785~1833)이 祔祭의 절차를 행하려 할 때 의심하는 점을 묻는 편지이다.
편지의 수급인은 알 수 없지만 상대방이 산소로 몸소 찾아와 주셔서 지금까지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류의목이 의논하려고 하는 것은 모레 祔祭의 절차를 행하려고 하는데, 의심할 만한 것이 있어서 이를 기록하여 여쭙고 아울러 지난날 이미 행한 것도 아뢴다고 하였다.
葬과 祥을 치르기 전 날 밤에 殷奠하는 것은 『주자가례』에는 없으나, 영남의 풍속에서는 행해지는데, 일찍이 선배들이 이것을 힘써서 논한 것을 보면, 단호하게 이를 폐지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하였다. 류의목은 애초에 이를 폐지하려고 했으나, 도리어 말세의 습속이 시끄러워 간혹 인정에 가깝지 않다는 말이 있을까 염려하여, 습속을 따르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폐지하는 것이 참으로 맞을 것이며, 앞으로 두 번의 상이 있으니, 선배들이 논한 바를 따라서 행하지 않는 것이 어떨지 여쭈었다.
朝祖[朝奠을 마친 뒤 혼백을 모시고 사당에 가서 마지막으로 조상을 뵙게 하는 의식]의 ‘祖’는 옛 사람들이 사당[廟]을 일컬었는데, 이는 옳으며, 『喪禮備要』에 보인다고 하였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祖’를 祖考의 祖라고 하는데, 이 설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일찍이 祖廟가 멀어서 朝祖를 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질문하자, 寒岡 鄭逑가 말하길, "예컨대 특별히 禰廟가 있으면, 마땅히 禰廟에 행해야 한다."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 류의목의 집안에는 할아버지 사당과 아버지 사당이 모두 여기에 없기 때문에 이번에 조조의 예는 先考의 방에서 행하려하는데, 禮家에게 비난 받지 않을 런지 물어보았다.
분향과 강신은 모두 재배의 절차가 있으나, 요즘 사람들은 분향과 강신을 함께 행하고는 단지 한 번만 재배하는데, 이는 『주자가례』와 서로 어긋난다고 하였다. 류의목은 애초에 각각 재배하려 했으나, 우선은 시속을 따랐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자가례』에 없는 것이니, 『주자가례』를 따라 행하는 것이 어떨지 물었다.
祔祭 때 요즘 사람들은 상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부제에 참석하지 않고, 다만 제사 지내는 줄 밖에서 俯伏하는데, 이것 또한『주자가례』에는 근거가 없다고 하였다.
初獻할 때 만약 상주가 宗子가 아니면, 종자가 하고, 亞獻할 때 만약 상주가 종자가 아니면, 상주는 아헌을 행하는데, 이것에 의하면, 상주가 만약 종자면 곧바로 초헌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노선생[퇴계 이황]께서 일찍이 朝祖를 논하면서 "상복을 입은 사람이 사당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다른 제사와 다른 예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주자가례』부제 조에 ‘상복을 입은 사람은 사당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이른바 상복을 입은 사람이 사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다른 제사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라고 보았다. 또 ‘文忠公府君與人書’를 살펴보면, "『가례』에 ‘졸곡을 지낸 뒤에 祔祭를 이미 사당에서 지내고, 상제에 이르러 또 遞遷에 고한다.’고 하는 두 곳 모두 주인이 직접 행하는 것이고, 모두 變服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으니, ‘상복[縗絰] 차림으로 사당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설은 아마도 준거로 삼기에는 불가할 듯하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류의목은 이것으로 미루어, 요즘 사람들이 상복을 핑계대고 부제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매우 근거 없는 일이며, 모레(이튿날) 부제에 반드시 상복을 입고 아헌을 올릴 것이니, 시속을 놀라게 하는데 이를 것이라고 하였다.
발급인에 ‘懿睦 疏上’으로 표기했는데, ‘疏上’은 喪制가 편지 끝에 쓰는 말이다. 柳懿睦은 豊山柳氏 謙巖派 22세손으로, 자는 彛好이고, 호는 守軒이다. 父는 柳善祚(1757~1799)인데, 일찍 졸하여 조부 柳一春(1724~1810)의 엄격한 훈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성리학에 관심을 보인 그는 鶴棲 柳台佐(1736-1837), 立齋 鄭宗魯(1738~1816) 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居然齋와 偶愛軒을 짓고 독서하는 삶을 살았으며, 저서로 『守軒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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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년 류의목(柳懿睦) 서간(書簡)

山上躳臨。至今感注。此間儀節之可商者。初欲稟議
而行之。爲潦漲所阻。未免臨時杜撰。再明將行祔祭之節
次。又有可疑敢此錄禀。並與前日所已行者。仰溷。此雖後時
欲聞敎意之如何耳。
葬及祥前夕殷奠。家禮所無而嶺俗爲之嘗見前輩論此甚力。以斷然
廢之爲是。姪初欲廢之。卻念末俗嘵嘵。或有不近情之言。未
免隨俗。然廢之誠是。前頭尙有二祥。依前輩所論。不行何如
朝祖之祖。古人謂廟曰祖。一時賢之。說見於備要。今人。率以祖爲
祖考之祖。此說非是。嘗見人以祖廟遠難於朝祖爲問。寒岡曰
如別有禰廟。當行於禰廟。今以姪家所處。則祖禰廟。俱
不在此。故今番朝禮。止行於先考之室。或不見誚於禮家
耶。
焚香降神。俱有再拜之節。而今人兼行焚香降神。止一再拜
此與家禮相戾。姪初欲各行再拜。而却念此或有已例如此
姑且循俗。然旣是家禮所無。依家禮行之如何。
祔祭時。今人以凶服之。故不參祔祭。只俯伏於祭列之外。此亦
無據家禮。初獻若喪主非宗子。則宗子行之。亞獻若
喪主非宗子。則喪主爲亞獻。據此喪主若宗子。則直爲初
獻。可知老先生嘗論朝祖。有曰。凶服不可入廟。指他祭他禮
而言。朝祖之時。樞尙入廟。何凶服之不可入。今家禮祔祭條
亦不言凶服之不可入。則所謂凶服之不入。指他祭而言者。此亦然
矣。又按文忠公府君與人書。亦曰。家禮卒哭後祔祭。已行
於祠堂。到祥又告遷兩處。皆主人所親行。而皆不言變
服。則縗絰不入廟之說。恐不可爲準。以此觀之。今人之諉以凶服
不參祔祭。豈非無據之甚耶。再明祔祭。須以衰服亞
獻。或不至駭俗耶。
卽朝 罪姪 懿睦 疏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