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台佐가 오동나무 재목을 보내려고 하니 수레를 내어 달라고 美洞으로 보내는 편지
柳台佐(1763~1837)가 오동나무 재목을 보내려고 하니 수레를 내어 달라고 美洞으로 보내는 편지이다.
편지는 상대방의 안부 인사로 시작된다. 잠깐 이별하여 슬펐는데 곧바로 편지를 받아서 부모를 모시는 당신의 안부가 한결같이 편안하시고 상을 당한 당신의 아들도 잘 견디고 있다고 하니, 매우 위로된다고 하였다. 류이좌는 병이 그대로이고, 어제 從兄 柳相祚가 올린 疏의 비답이 내려왔는데 試用하겠다고 하나 나아가기 어려울 것 같아 다시 임금께 글을 올려 반드시 체직되기를 바라니 매우 황송하다고 했다.
오동나무 材木을 美洞으로 보내려고 하니, 수레를 내어 달라고 하였다. 편지의 예식을 생략하고 답장을 바란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끝맺었다.
추신에는 賜祭 받는 날을 정해 그것을 행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으며, 內行을 보낼 때 이곳으로 오는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다. 賜祭는 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祭祀를 내려 주는 것으로, 사제의 대상은 西厓 柳成龍이다.
발급인 柳台佐의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으로,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 문과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수급인은 알 수 없지만, 美洞으로 보낸 것이다. 미동은 풍산김씨 11세 潛庵 金義貞(1467~1535)이 한양에서 낙향하여 세거하면서 풍산김씨 동성마을이 되었다. 풍산김씨는 대대로 서애 류성룡의 학문적 입장을 계승했고, 풍산류씨와 혼인도 빈번하게 하였으며, 향촌의 여러 가지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추신에 ‘內行’이 언급된 것으로 미루어 사돈지간으로 짐작된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