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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김형칠(金衡七)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34.4717-20130630.0103257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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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형칠, 류호집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34
형태사항 크기: 18.6 X 45.1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34년 김형칠(金衡七) 서간(書簡)
1934년 9월 그믐 전날, 김형칠이 사돈인 류호집에게 호계서원의 일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광대뼈와 턱이 아파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호계서원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니 무척 근심스러우며 임원이 잘못 선출하여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하며 가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어서 당신이 계신 지역에도 이러한 점을 이해하시고 문제되는 의견이 제기되지 않도록 힘써 달라고 하였다. 끝으로 상대의 생일을 축하드린다고 하며 편지를 마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934년 9월 그믐 전날, 김형칠이 사돈인 류호집에게 虎溪書院의 일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
1934년 9월 그믐 전날에 天游 金衡七(1874~1959)이 사돈인 半啞 柳顥集(1887~1945)에게 虎溪書院의 일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가 지난번에 星峽에 갔다가 돌아왔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그때 함께 다니면서 며칠 동안 그곳에서 노닐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하늘이 기회를 줘도 늘 일로 인하여 구속을 받게 되니, 언제쯤이면 굴레에서 벗어나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이어,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金衡七 자신은 오른쪽 광대뼈와 턱이 6, 7일 동안이나 아파서 먹고 마시는 데에 크게 지장이 있으니, 매우 괴롭다고 하였다. 다만 어버이께서는 다행히 병환이 없다고 하였다.
虎溪書院의 일은 일종의 근거 없는 의논이 아직 잠잠해지지 않고 있으니, 너무나도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지혜가 없어서 일을 처리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하여금 祭享을 빙자하여 殘物을 보관하게 한다면, 분수를 넘은 제사를 泰山이 歆饗하지 않는 것처럼 제대로 書院의 祭祀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곳의 유생들은 孟子의 黜享을 막기 위하여 죽을 각오를 다졌던 錢唐처럼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嶺東에서 만약 雷同하는 의논을 제기하면 통절히 억제하여 다시 제기되지 못하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虎溪書院의 운영을 둘러싸고 일종의 잡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인 내막은 이 편지만으로는 살필 수 없다. 끝으로, 내일이 상대의 생일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祝壽하였다.
발급인 金衡七은 자는 聖齊, 호는 天游이고 본관은 義城, 본적은 安東이다. 아버지는 金秉植이고 靑溪 金璡의 冑孫이다. 수취인 柳顥集은 자가 伯昇, 호가 半啞이고 본관은 全州이고 본적은 安東이다. 柳淵楫, 李晩燾의 문인이고 奮山 柳淵鱗의 장남이다. 그는 『안동 독립운동가 700인』에 올라 있는데, "1910년 나라를 잃은 직후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혹형을 당했다고 전해지는데, 의용단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저서로는 『半啞遺稿』가 전해진다.
이 편지는 호계서원의 제사와 임원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나 그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편지의 발급자인 金衡七錢唐孟子의 黜享을 막은 고사, 『論語』「八佾」에서 孔子泰山의 제사와 관련하여 冉孺를 질책하는 고사를 이용해 강력히 비판하였다. 또한 향촌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자신들과 혼인으로 맺어진 전주류씨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34년 김형칠(金衡七) 서간(書簡)

向來。星峽
旆。伏想返卸矣。恨不得其時聯
笻。爲數日盤礴於其間也。天借
其便。而每爲人事牽縛。未知何
時可得脫馽否。日來
靖候一向否。下生。右顂輔車。連六
七宵作疼。大妨啖飮。可苦可苦。而親
候幸無客添也。虎溪事。一種浮
議。尙不淨息。極是可誤(虞)。使無頭腦
難處事。而認爲得計。若藉託祭
享。而爲保管殘物之地。則林放之所
不屑爲。泰山豈肯饗之乎。於是乎
愈見其卑且汙哉。此邊生當爲孟
氏受箭矣。嶺東若倘有雷同之說。
痛抑之。俾勿更起。如何如何。來日是
覽揆之辰云。更此攢獻
岡陵也。餘。都縮。伏希
鑒下。
甲戌九月小晦。金衡七。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