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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김형칠(金衡七)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34.4717-20130630.010325700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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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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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형칠, 류호집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34
형태사항 크기: 17.8 X 41.2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34년 김형칠(金衡七) 서간(書簡)
1934년 6월 21일, 김형칠이 수해 및 혼인 신고와 관련하여 류호집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늙으신 어버이께서 덥고 습한 계절을 맞아 지내시기가 더욱 힘드신 데다 요사이 여름감기를 앓으시는 것 같다고 하면서 애타는 마음을 전하였다. 또한 날마다 도랑을 뚫고 둑을 쌓는 일을 하고 있는데 겨우 동쪽을 막으면 서쪽이 터졌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하면서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혼인신고서와 호적초본을 올린다고 하면서, 채워서 써넣을 부분은 두 사람의 필적으로 하지 말며 여기의 성명란도 모두 류호집이 채워서 써넣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아울러 도장도 동봉해서 올린다고 하고 부인의 도장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 "昌" 1자를 새겨서 사용하시고 사용하고 나서는 곧 모두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김선주

상세정보

1934년 6월 21일, 김형칠이 수해 및 혼인 신고와 관련하여 류호집에게 보낸 편지
1934년 6월 21일에 天游 金衡七(1874~1959)이 수해 및 혼인 신고와 관련하여 사돈인 半啞 柳顥集(1887~1945)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재앙이 닥친 시절에 柳積勳(류호집의 아들, 七休堂 柳寔勳의 동생)이 자신을 방문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또한 그를 통해서 상대가 홀로 수해를 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일단 축하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직 구름이 두껍게 겹쳐 있는 등 기상이 좋지 않다고 하면서, 제방과 도랑을 정리하여 대비하라고 당부하였다.
김형칠은 늙으신 어버이께서 덥고 습한 계절을 맞아 지내시기가 더욱 힘드신 데다 요사이 여름감기를 앓으시는 것 같다고 하면서 애타는 마음을 전하였다. 또한 김형칠 자신도 날마다 孱僮들과 더불어 도랑을 뚫고 둑을 쌓는 일을 하고 있는데 겨우 동쪽을 막으면 서쪽이 터졌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하면서, 『書經』의 말을 인용하여 "禹王이 검은 圭를 올려 에게 成功을 아뢰었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역량이란 말입니까"라며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혼인신고서와 호적초본을 올린다고 하면서, 채워서 써넣을 부분은 두 사람의 필적으로 하지 말며 여기의 성명란도 모두 류호집이 채워서 써넣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아울러 도장도 동봉해서 올린다고 하고 부인의 도장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 "昌" 1자를 새겨서 사용하시고 사용하고 나서는 곧 모두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저께 비가 내린 뒤로 앞 시내의 수위 변화를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류적훈이 기어이 떠나갔다고 하면서, 이는 자신의 집에 대접할 것이 없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니 매우 신경이 쓰인다고 하였다.
발급인 김형칠은 자가 聖齊이고, 호는 天游이다. 아버지는 秉植이고, 안동에 거주하였다. 본관은 義城으로, 靑溪 金璡의 胄孫이다. 그의 딸인 義城金氏(金時娟)가 류호집의 장남인 류식훈에게 시집가서 柳仲坤 등을 낳았다. 곧 김형칠류호집은 사돈지간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34년 김형칠(金衡七) 서간(書簡)

日間恰恰。是屯蒙未開之世。其黎
首之一㥘會乎。此際積勳披鈴。
忽戾承慰。比來
起居。可感可感也。水害獨保宛局云。
可賀。而密雲尙厚濃。不肯撒開。安
保來者之可懼。不愈大於過去之可驚
也。必疏其溝洫。峻其防隄以待之。如何。査
弟。當此暑濕。耋親經過。百倍艱窒。
而重以日間。似以暑感。方有微諐。悚
灼難狀也。賤軀日與孱僮。開溝築堰
是事。纔一東塞。西已告壞。喘弊欲倒。
未知錫玄來告厥成者。果何力量耶。
婚姻申告用紙幷民籍抄本仰呈。其塡
書處。不須以二筆爲之。此間姓名欄。亦幷
座下塡書之。如何。圖章亦封上耳。內間
章搜覓。而終不可得內間云。若閪落於前
春松石時耳。須刻昌一字以用之。旣用而
旋幷俯擲。至跂耳。再昨兩後。前溪漲
落未可知。而積勳期於發去。其祟未始不由
於廚冷。殊以懸懸也。餘。伏希
亮察。
甲戌 六月 二十一日。金衡七 謝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