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3월 6일에 류호집이 김실이의 병세 및 말을 빌리는 문제와 관련하여 부친인 류연린에게 보낸 편지
1933년 3월 6일에 半啞 柳顥集(1887~1945)이 김실이의 병세 및 말을 빌리는 문제와 관련하여 부친인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동쪽으로 가신 일에 대해 어제 돌아오셨을 줄로 아는데 여독으로 인해 기력이 상하지는 않으셨는지 안부를 물으며 주신 편지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다고 하였다. 이어서 김실이의 병세는 매우 걱정하고 있었으나 기별을 들으니 그녀의 병이 생각했었던 것에 비해서는 그런대로 괜찮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데리고 돌아오려고 생각했었으나 김실이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어서 어제 오후에 전송했는데 그 병세가 현재 그리 위급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또 그녀가 장례가 끝난 뒤에 覲親하러 와서 元表를 불러다가 치료할 생각이라고 하였고 그녀도 지각이 없는 어린아이가 아니니 어찌 스스로 요량하지 못할 리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부디 지나치게 근심하지 마시라고 당부하였다. 끝으로, 愚洞의 말에 관한 일은 어제 準英을 만나서 얘기해 봤더니 말을 빌려서 오후에는 끌고 오겠다고 하였으니, 내일은 돌아가서 柳淵鱗을 뵈올 생각이라고 하였다.
柳淵鱗은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는데 3남은 柳顥集, 柳顥策, 柳顥植이고 3명의 딸 중 두 명은 각각 金鍾九와 金時潤에게 시집을 갔다. 金鍾九는 본적은 光山이고 後彫堂 冑孫으로 아버지는 金基東이다. 金時潤은 본적은 義城이고 芝村 冑孫으로 아버지는 金斗煥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김실이는 이 두 명중 한명으로 생각된다.
발급인 柳顥集은 자가 伯昇, 호가 半啞이고 본관은 全州이고 본적은 安東이다. 柳淵楫, 李晩燾의 문인이고 奮山 柳淵鱗의 장남이다. 그는 『안동 독립운동가 700인』에 올라 있는데, "1910년 나라를 잃은 직후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혹형을 당했다고 전해지는데, 의용단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저서로는 『半啞遺稿』가 전해진다. 수취인 柳淵鱗은 자가 見卿, 호가 奮山이고 西山 金興洛 문인으로 響山 李晩燾의 사위이다. 일제강점기 때 군자금 모금을 주동하였으며 유고 2권이 전해진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