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5월 28일, 류동걸이 약수 복용을 위해 외지에 머물고 있으면서 근황을 전하기 위해 류연린에게 보낸 편지
1933년 5월 28일에 慕庵 柳東杰(1874~1935)이 藥水 복용을 위해 외지에 머물고 있으면서 근황을 전하기 위해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앞부분이 잘려 있어서 서두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먼저, 어떤 증상으로 인하여 기운이 無時로 통하지 않으니 그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누가 알겠느냐고 하였다. 점점 병증이 악화되고 있으니 그저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위안으로 삼을 것이 없다고 하였다. 류연린의 지극한 권유로 날마다 왕래하며 藥水를 快飮하였더니 효험이 있는 듯하지만, 십 년 동안의 고질병을 뿌리 뽑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식구들은 예전처럼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하였고, 특히 23일 오후 未時에 손자를 얻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손자란 一也 柳世熙의 아들인 經洲 柳赫仁을 가리킨다. 손자를 본 일은 아무 재미도 없이 외롭게 타지에서 기거하는 중에 자신 집안의 요사이 경사가 된다고 하였다. 더구나 며느리가 순산하여 무탈하니 더욱 기특하며, 류혁인의 골격이 비범하니 장래의 희망이 크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류연린이 조만간 한 번 행차하시어 구경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이어, 내일은 자신의 조부인 柳在鎬의 忌日인데 예법대로 제사를 지낼 수 없을 듯하다고 하면서, 바깥에 있는 자신의 슬픈 마음을 가눌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이 돌아갈 날을 현재로서는 분명하게 정할 수는 없으나 조만간 돌아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從君(류연린의 아들)에게는 편지를 보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였으며, 伯振(所安 柳東麟)은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요즘 보리를 이미 타작하고 있으니 굶주림은 면하였는지도 물었다.
끝으로, 조석으로 함께 앉아 얘기하실 때 타지에서 외롭게 기거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잊지 않고 언급하고 있느냐고 하면서 고향 생각을 금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인 류동걸은 류재호의 손자이자 瓠石 柳淵甲의 아들이다. 자는 聖興이고, 호는 慕庵이다. 안동에 살았다. 18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합격한 바 있다. 그는 奮山 류연린의 從姪이다. 柳淵龜가 쓴 行狀이 전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