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1월 15일, 송주환이 혼사 등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
1932년 11월 15일에 源泉 宋冑煥(1870∼1954)이 혼사 등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지난번 당신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君子를 만난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은 몇 곳을 돌아다니다가 尊所를 거행한다고 들었으며 자신의 60년 인생을 돌아보니 회상하니 안타깝다고 하고 있다. 상대가 손자의 교육을 부탁한 일에 대해서 그가 훌륭한 집안의 사람이니 자신이 감당할 것이 아니었지만 보잘것없는 자신을 상대가 인정해줘서 옛사람이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쳐 주는 방법으로 기약하니 끝내 사양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下溪를 방문하는 일로 공교롭게 만나지 못하여 부탁을 저버리게 되었으니 매우 한스러웠다고 하였다. 그런데 仁吉 李棟欽 君이 잘 가르친다고 하면서, 그에게 공부시키면 依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權魯燮 君과 李棟欽 君이 멀리 가야산으로 들어가 여러 해를 지내면서 돌아오지 않을 계획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그들이 은거하는 것이 매우 부럽다고 하였다. 또한 상대 손자가 혹 그들과 함께 가야산에 갔는지도 물었다.
또한 상대가 부탁한 婚說에 대해, 楓井의 福彦 兄 집안의 손녀를 언급하면서 그 집안의 내면은 외양보다 낫다고 하였다. 먼저 상대의 의향을 알아본 연후에 저쪽 집안과 의논하여 중매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가부를 회시해 달라고 하였다. 끝으로, 신랑감은 丁巳이고 신부감은 戊午인데 陰陽家에게 물어봤더니 戊가 巳를 만나면 正祿이고 丁이 午를 만나면 天祿이며 또한 火와 土의 納音相生으로 매우 길하다고 했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자신의 原泉齋 韻에 대한 화답시를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편지에 등장하는 仁吉은 李棟欽을 의미한다. 安東 출신으로 李晩燾의 손자이며 李中業의 아들이다. 1918년 4월 光復會로부터 지령을 받고 奉化郡에서 군자금을 모으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5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1925년 金昌淑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제2차 慶北儒林團에 참가하였다. 그는 達城, 英陽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6년 5월 1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免訴 판결을 받아 풀려났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또한 權魯燮은 (1899~1946)은 자가 悳夫, 호는 一軒, 본관은 安東이고 본적은 奉化 春陽이다. 아버지는 權相龍이다. 저서로는 『一軒集』이 전해진다.
이 편지는 1930년대 영남 지역 사족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즉 서로간의 자식들을 바꾸어 학문을 가르치는 방식이나 결혼에서 서로간의 사주를 확인하는 모습을 통해 비록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는 조선의 풍속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