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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송주환(宋冑煥)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32.0000-20130630.0103257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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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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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송주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32
형태사항 크기: 21.6 X 42.3
장정: 낱장
수량: 2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32년 송주환(宋冑煥) 서간(書簡)
1932년 11월 15일, 송주환이 혼사 등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당신을 간절히 그리워했는데 만나서 이야기하니 기쁘다고 하였다. 자신은 몇 곳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며 상대가 부탁하신 손자의 교육에 대한 일은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 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권노섭이동흠 군이 가야산에 가서 여러 해 지낼 계획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혹 당신도 따라 가셨는지 물었다. 끝으로 상대의 의향을 알아본 연후에 저쪽 집안과 의논하여 중매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932년 11월 15일, 송주환이 혼사 등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
1932년 11월 15일에 源泉 宋冑煥(1870∼1954)이 혼사 등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지난번 당신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君子를 만난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은 몇 곳을 돌아다니다가 尊所를 거행한다고 들었으며 자신의 60년 인생을 돌아보니 회상하니 안타깝다고 하고 있다. 상대가 손자의 교육을 부탁한 일에 대해서 그가 훌륭한 집안의 사람이니 자신이 감당할 것이 아니었지만 보잘것없는 자신을 상대가 인정해줘서 옛사람이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쳐 주는 방법으로 기약하니 끝내 사양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下溪를 방문하는 일로 공교롭게 만나지 못하여 부탁을 저버리게 되었으니 매우 한스러웠다고 하였다. 그런데 仁吉 李棟欽 君이 잘 가르친다고 하면서, 그에게 공부시키면 依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權魯燮 君과 李棟欽 君이 멀리 가야산으로 들어가 여러 해를 지내면서 돌아오지 않을 계획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그들이 은거하는 것이 매우 부럽다고 하였다. 또한 상대 손자가 혹 그들과 함께 가야산에 갔는지도 물었다.
또한 상대가 부탁한 婚說에 대해, 楓井福彦 兄 집안의 손녀를 언급하면서 그 집안의 내면은 외양보다 낫다고 하였다. 먼저 상대의 의향을 알아본 연후에 저쪽 집안과 의논하여 중매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가부를 회시해 달라고 하였다. 끝으로, 신랑감은 丁巳이고 신부감은 戊午인데 陰陽家에게 물어봤더니 戊가 巳를 만나면 正祿이고 丁이 午를 만나면 天祿이며 또한 火와 土의 納音相生으로 매우 길하다고 했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자신의 原泉齋 韻에 대한 화답시를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편지에 등장하는 仁吉은 李棟欽을 의미한다. 安東 출신으로 李晩燾의 손자이며 李中業의 아들이다. 1918년 4월 光復會로부터 지령을 받고 奉化郡에서 군자금을 모으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5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1925金昌淑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제2차 慶北儒林團에 참가하였다. 그는 達城, 英陽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6년 5월 1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免訴 판결을 받아 풀려났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또한 權魯燮은 (1899~1946)은 자가 悳夫, 호는 一軒, 본관은 安東이고 본적은 奉化 春陽이다. 아버지는 權相龍이다. 저서로는 『一軒集』이 전해진다.
이 편지는 1930년대 영남 지역 사족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즉 서로간의 자식들을 바꾸어 학문을 가르치는 방식이나 결혼에서 서로간의 사주를 확인하는 모습을 통해 비록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는 조선의 풍속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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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송주환(宋?煥) 서간(書簡)

前請原泉齋韻。勿置忘域否。和送切仰。淸情聲精成。
年前。羅門賜枉。何等潁光。懶不趁謝。一念
傾嚮。如矢注的。如其奉面。則若將有洽商量。而
及對。竟無特別話。此正謂君子之交。淡也如水
者耶。謹惟陽復不遠。
燕養德體益亨。炳燭之工。恒庸慥慥。庭趨
順受。倫樂融洽。門庭應副想煩蜂午。定力之
健。不以衰耗而自懈耶。周周溯溯。冑煥。向行幾處。
盤旋悤悤。擧聞尊所。怳然若夢過仙府。回念六
旬經歷。亦從那箇關促了。良庸自憐。前托令
彧勸誘。其在法家人也。非敢承當。顧此無狀。
蒙荷知獎。猥以古人之道相期。易敎之術。
不可終歸遜辭。還訪下溪。意有在焉。巧爾乖
逢。孤負尊敎。齎恨深矣。然竊想仁吉君善
誘道。送其允做榻。意其得依歸矣。近聞權
魯燮君遠入伽倻。作經年不返之
計云。未知所執何如。其高遯可艶也。令彧或可
偕行耶。下托婚說。傾悃之至。寧不敢自忘。嘿數
親知之家。則楓井福彦兄有孫閨。其家外樣。
想坐料弟。則有內應於其家。深知裏面。有勝於外。
妄作薪斧於其間。欲先知尊意。然後議及彼家。
可否間。回示切仰。閨年與盛算少違。郞丁巳
戊午。議及於陰陽家。戊逢巳爲正祿。丁逢午
爲天祿。且火土納音相生。克配其吉。下諒至望。餘。
不備。仰惟
尊照。
壬申十一月十五日。損弟宋冑煥。二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