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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김형칠(金衡七)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31.4717-20130630.01032570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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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형칠, 류호집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31
형태사항 크기: 20.9 X 46.8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31년 김형칠(金衡七) 서간(書簡)
1931년 6월 2일, 김형칠이 죽은 아우의 小祥에 대한 소식 등을 전하기 위해 류호집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사돈인 류호집의 안부를 묻고, 혹심한 가뭄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애를 태운다고 하면서 상대에 대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김형칠 자신은 요사이 죽은 아우의 소상을 치렀다고 하였다. 아우를 잃은 데 대한 슬픈 마음만 간절한 뿐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다만 노친께서 근래 별탈이 없으시고 穆君 등이 잘 지내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고 하였다. 류호집의 노복이 떠나갔는데 그가 여러 날을 거듭하여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매우 가상하다고 하였다. 올 가을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모두 그의 덕분일 거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선주

상세정보

1931년 6월 2일, 김형칠이 죽은 아우의 小祥에 대한 소식 등을 전하기 위해 류호집에게 보낸 편지
1931년 6월 2일에 天游 金衡七(1874~1959)이 죽은 아우의 小祥에 대한 소식 등을 전하기 위해 半啞 柳顥集(1887~1945)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사돈인 류호집의 안부를 묻고, 혹심한 가뭄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애를 태운다고 하면서 상대에 대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김형칠 자신은 요사이 죽은 아우의 소상을 치렀다고 하였다. 아우를 잃은 데 대한 슬픈 마음만 간절한 뿐만이 아니고, 훌륭한 덕성을 지녔던 아우를 자신이 매우 의지하였는데 갑자기 그를 잃게 되니, 지난 50여 년을 추억해 보건대 세상에서 서로 형과 아우로 지냈던 것이 마치 봄날의 백일몽과 같다고 하였다. 다만 노친께서 근래 별탈이 없으시고 君 등이 잘 지내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고 하였다. 류호집의 노복이 떠나갔는데 그가 여러 날을 거듭하여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매우 가상하다고 하였다. 올 가을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모두 그의 덕분일 거라고 하였다.
끝으로, 군을 보내달라는 류호집의 부탁에도 자신이 그를 붙잡아 놓고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사납고 제멋대로 날뛰는 자가 表文을 올리고 즉시 출동한 격[제멋대로 곧장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였다.
추신에서는, 류호집의 부친인 奮山 柳淵鱗에게는 답장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죄송한 마음을 아뢰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김형칠은 靑溪 金璡의 胄孫이다. 그의 딸인 義城金氏 金時娟류호집의 장남인 七休堂 柳寔勳에게 시집가서 柳仲坤 등을 낳았다. 곧 김형칠류호집은 사돈지간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31년 김형칠(金衡七) 서간(書簡)

伏候日來。
省餘起止篤祐。積沴乖多。前
旣久陰不雨。倏此愆湯熇熱。
令人焦灼不自堪。每東望種
種也。査弟。間經亡弟朞祥。匪
惟悼恫之是摯。其人外雖若無
攸能。而其中實有人不可幾及
者。方倚以爲崇鄘鉅郛。而忽
此喪失。回思五十餘年。爲弟爲兄於
人間者。窅若春晝一夢。謂之何
哉。惟耋親近免別諐。君若
其對之善遣是幸耳。貴丁
牽角告去。其積日不辭勞勩。
殊可獎。今秋若得甁儲不空。
則安知匪渠力是藉也。來書
君。必使返庭。此君歸亦
有何抵賴於事也耶。未可放過。
幾日受讀魯論幾板否。嚴命
之下。擅自挽置。類似古之强戾
跋扈者。拜表輒行。知罪罪也。方
患阿睹。囏此拜復。
辛未 六月 二日。査弟 金衡七 拜謝。

未得謝禮於春堂。倘上達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