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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김종구(金鍾九)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31.4717-20130630.01032570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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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종구, 류연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31
형태사항 크기: 22.4 X 36.3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31년 김종구(金鍾九) 서간(書簡)
1931년 6월 26일에 김종구가 진찰을 위해 아들을 보내는 일과 관련하여 장인 류연린에게 보낸 편지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안부를 묻지 못하여 몹시 그립고도 죄송하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비롯한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예전처럼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연로한 어버이가 건강하지 못해 애가 탄다고 하였다. 아들의 병은 미천의 약을 복용하고 나서 조금 효험을 보았지만 병의 뿌리를 뽑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였다. 미천에서 진찰받는 것이 좋을 듯하여 아이를 보낸다고 하면서, 날씨가 서늘해지면 보낼 생각이었지만 조바심이 나서 더위를 무릅쓰고 가게 되었으니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아이를 여러 날 지체하지 말고 돌아오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931년 6월 26일, 金鍾九가 진찰을 위해 아들을 보내는 일과 관련하여 장인인 柳淵鱗에게 보낸 편지
1931년 6월 26일에 檀汕 金鍾九(1891~1974)가 진찰을 위해 아들을 보내는 일과 관련하여 장인인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봄부터 여름까지 왕래하는 인편이 없지 않았으나 번번이 나태함으로 시일을 끌다가 안부를 묻지 못했다고 하면서, 평소보다 더욱 그리워하면서도 죄송했다고 하였다. 이어, 류연린 및 아드님,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金鍾九 자신은 예전처럼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다행으로 여길 것도 없다고 하였다. 건강이 좋지 못하신 나이 드신 어버이로 인해 이루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애가 탄다고 하였다. 또한 아들의 병이 완쾌되지 않다가 湄川의 약제를 복용하고 나서 조금의 효험을 보는 듯하지만 용이하게 병의 뿌리를 뽑기를 바랄 수는 없다고 하였다. 柳淵鱗을 뵙고 湄川에 가서 한 번 아이의 神色을 진찰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기 때문에 아이를 보냈다고 하였다. 당초에는 서늘해진 뒤에 도모할 생각이었으나 결국에는 鬱氣로 인해 조바심이 생겨 말리지 못하고 더위를 무릅쓰고 가게 되었으니 걱정이 크다고 하였다. 끝으로, 그로 하여금 많은 날을 지체하게 하지 말고 돌아오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金鍾九의 본관은 光山이고 자는 國聲이며 호는 檀汕이다. 光山金氏 禮安派 冑孫(後凋堂 金富弼의 冑孫)으로 한학자이다. 陶山書院 원장을 비롯하여 안동 지역 여러 서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檀汕集』이 있다. 그는 奮山 柳淵鱗의 사위이다. 全州柳氏와의 사이에 金昌漢 · 金澤鎭 · 金世漢 등의 자식을 두었다.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31년 김종구(金鍾九) 서간(書簡)

稽顙白。自春徂夏。不無往來便梯。而
每被懶因循動靜候問。厥若尋常。
所以傾慕而悚昃之者。不翅若誰昔昇
平之日。伏未審霪餘亢旱。
靜中氣體候神護康謐。胤兄長第
承歡怡愉。寶覃均穩。而同君所做。日
有長進之格否。種種區區哀溯之至。外甥罪人。
不死頑縷。依舊尙延。何足自幸。而耋闈
將攝。恒患凜惙。情私煎泣。豈可盡達。
兒子所戒。尙爾未坦。而自服湄川劑。似有
些小效應。然安可望容易去蔕也。今行爲
晉拜高軒。而迤進湄川。使之一番診
其神色似好。故送之。然初擬凉生後以
圖。而竟爲渠鬱氣所動。不得挽住。極
熱觸冒。悶慮不細。使不挽尼多日。而趁使
命還伏望耳。餘。荒迷不次。伏惟
下鑑。
辛未六月念六日。罪外甥 金鍾九。疏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