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6월 26일, 金鍾九가 진찰을 위해 아들을 보내는 일과 관련하여 장인인 柳淵鱗에게 보낸 편지
1931년 6월 26일에 檀汕 金鍾九(1891~1974)가 진찰을 위해 아들을 보내는 일과 관련하여 장인인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봄부터 여름까지 왕래하는 인편이 없지 않았으나 번번이 나태함으로 시일을 끌다가 안부를 묻지 못했다고 하면서, 평소보다 더욱 그리워하면서도 죄송했다고 하였다. 이어, 류연린 및 아드님,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金鍾九 자신은 예전처럼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다행으로 여길 것도 없다고 하였다. 건강이 좋지 못하신 나이 드신 어버이로 인해 이루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애가 탄다고 하였다. 또한 아들의 병이 완쾌되지 않다가 湄川의 약제를 복용하고 나서 조금의 효험을 보는 듯하지만 용이하게 병의 뿌리를 뽑기를 바랄 수는 없다고 하였다. 柳淵鱗을 뵙고 湄川에 가서 한 번 아이의 神色을 진찰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기 때문에 아이를 보냈다고 하였다. 당초에는 서늘해진 뒤에 도모할 생각이었으나 결국에는 鬱氣로 인해 조바심이 생겨 말리지 못하고 더위를 무릅쓰고 가게 되었으니 걱정이 크다고 하였다. 끝으로, 그로 하여금 많은 날을 지체하게 하지 말고 돌아오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金鍾九의 본관은 光山이고 자는 國聲이며 호는 檀汕이다. 光山金氏 禮安派 冑孫(後凋堂 金富弼의 冑孫)으로 한학자이다. 陶山書院 원장을 비롯하여 안동 지역 여러 서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檀汕集』이 있다. 그는 奮山 柳淵鱗의 사위이다. 全州柳氏와의 사이에 金昌漢 · 金澤鎭 · 金世漢 등의 자식을 두었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