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929년 김기동(金基東)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29.4717-20130630.010325700300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기동, 류연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29
형태사항 크기: 21.8 X 47.8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29년 김기동(金基東) 서간(書簡)
1929년 1월 7일에 김기동이 연제를 지내는 일을 위로하기 위해 류연린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에 자신이 직접 위문가지 못한데다 상대방이 보내준 편지에 대한 답장도 늦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서 새해 안부를 묻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소상 날짜가 임박한 것에 대한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전염병으로 제사를 지내는 데에 구애받는 일은 없는지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의 병환이 악화되어 두려운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다 가족들도 독감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방 어머니의 소상 제사 때 아이가 가야 하지만 허리의 담증 때문에 추위를 무릅쓰고 갈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하면서, 편지 한 장만 보내는 형편에 대해 자책하였다. 끝으로 며느리와 어린 딸에 대한 안부를 전하고, 추신으로 교부에게 안부편지를 쓰지 못했으니 양해의 뜻을 전해 달라고 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929년 1월 7일, 金基東이 練祭에 대한 위로의 말을 전하기 위해 柳淵鱗에게 보낸 편지
1929년 1월 7일에 東洲 金基東(1874∼1930)이 練祭에 대한 위로의 말을 전하기 위해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자신이 직접 위문하지 못한 상황에서 柳淵鱗이 지난번에 편지를 보내 주었는데 그에 대한 답장도 이렇게 지체되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하였다. 이어 새해 안부를 물었는데 특히 練期가 임박하니 그 애통한 심정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위로의 뜻을 표하였다. 또한 전염병 기운이 없어져서 제사를 지내는 데에 애로가 없게 되었는지도 물었다. 金基東 자신은 어버이 병시중을 들면서 늘 두려운 상황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연말연시에 어버이의 병환이 더욱 악화되었고, 여기에 가족들까지 독감에 걸려서 한 사람도 완쾌된 이가 없다고 하면서, 새해를 맞은 재미가 조금도 없다고 하였다. 끝으로, 練祭가 임박하였으므로 아이가 마땅히 가보아야 하지만 그도 腰痰으로 고생하고 있으니 추위를 무릅쓰고 갈 수는 없을 듯하다고 하였다. 인편으로 편지 한 장을 달랑 보내니 이 어찌 情禮 상 마땅한 바이겠느냐고 자책하였다. 며느리는 근래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나 어린 딸이 膝脚에 浮疼을 앓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추신에서는, 겨를이 없어서 喬府에 안부편지를 쓰지 못한다고 하면서, 양해해 달라는 뜻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金基東柳淵鱗은 서로 사돈지간이다. 金基東의 아들 金鍾九全州柳氏와 혼인하였는데, 全州柳氏柳淵鱗의 딸이다. 金鍾九柳淵鱗의 맏사위이다. 金基東은 본관이 光山으로, 後凋堂 金富弼의 冑孫이다.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29년 김기동(金基東) 서간(書簡)

疏上。
省式。一番躬慰。尙此未焉。而向時拔例。
一疏謝復。又此稽。重重逋愧。蓋無以爲辭
也。伏惟新元。
上堂起居候萬護。
詩餘奠體支相否。燧穀一變。
練期且迫。僉孝思撫時隕痛。如何堪
勝。村葉保淨。無至有碍將事否。第切
區區悲溯之忱。契弟。湯侍節。何時不懍惙。
而餞迓之交。又有一番劇添。姑未就復
常度。眷們擧罹毒冒。無一惺完。山雲室
出院受治。未見特效。薄歲之歸。其愁惱
可想。俯仰裏許。寧有逢新味況耶。
常事在卽。兒也合有一行。而渠亦爲腰
痰所困。似不能作勞冒寒。因便一書。是
豈情禮所當耶。婦兒近稍免警。而穉
女以膝脚浮疼。費用添慮。又一殘憐耳。
餘萬。擾甚。不備疏禮。
哀照。
己巳正月七日。弟 金基東 追拜疏。

忙未得修候喬府。何敢望仰達
此意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