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4월 23일, 宜齋 姜泌이 근황을 전하기 위해 奮山 柳淵鱗에게 보낸 편지
1924년 4월 23일에 宜齋 姜泌(1878~1942)이 근황을 전하기 위해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작년가을 이래로 어버이 간호로 인하여 위문과 안부편지를 빠트렸던 것에 대해 언급하고, 그럼에도 상대가 너그럽게 양해해 주고 먼저 편지를 보내준 것에 대해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표하였다. 이어 服中에 있는 상대 및 자제들,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상대 차남이 약으로 치료하고 있다고 하니 머지않아 완쾌될 것이므로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喪을 당한 伯曾이 어떠하냐며 안부를 묻고, 자신이 때늦게 부고를 받은 관계로 조문편지까지도 늦어지는 등 해야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전하였다.
姜泌 자신은 노부모의 병환으로 날마다 애를 태우고 있는데 병세가 일정하지 못하고 동작할 만한 근력이 되지 못하신다고 하였다. 또한 지난겨울에 마당에서 떨어진 사고는 특별히 부상을 입은 곳이 생기게 하지는 않았으나 胃敗로 인하여 식사를 폐하고 있다는 등의 사정을 전하면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였다.
柳致好의 曾孫인 一汝[柳東夔]가 바쁜 일을 제쳐 놓고 멀리 와서 자신의 병든 어버이를 위로해 준 것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一汝가 겨울과 봄에 겪은 일을 생각해 보건대 姜泌 자신이 먼저 방문해야 했었다고 하면서, 그러하지 못하였던 것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전하였다. 더구나 자신이 外家에 대해 지은 逋慢한 죄가 산처럼 쌓여서 늘 방문하고자 하였으나 지금까지 차질이 있었다고 하면서, 날짜를 정해서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어버이께서 조금 회복되시면 만사를 제쳐 놓고 방문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草匣 1개를 올린다고 하였다.
宜齋 姜泌은 白樵 姜夏奎의 손자이자, 晩山 姜鎔의 아들이다. 姜鎔은 孔巖 柳致好의 딸인 全州 柳氏와 혼인하여 姜泌을 낳았다. 따라서 柳致好의 아들인 柳哲鎬는 姜泌에게 외삼촌이 되고, 柳致好의 손자인 柳淵兢과 柳淵永은 姜泌의 사촌이 된다. 따라서 수신자는 이 둘 가운데 한 사람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壽靜齋 집안과 관련지어 볼 때 이 집안 문건 가운데 1913년과 1918년에 보낸 姜泌의 편지에서 한 문건 내에서 ‘表從弟’와 ‘表再從弟’를 함께 쓰고 있다는 점, 표종제가 霞洞宅과 관련 있다는 점 등으로 보면 수취인은 자신의 表再從인 奮山 柳淵鱗일 가능성이 높다. 姜泌은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에 협조하였다가 옥고를 치른 바 있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