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12월 10일, 琴祜烈이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는 자신의 손자에게 지나친 학업으로 몸을 상하지 말 것과 안정된 생활을 위해 손부를 보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손자 琴容國에게 보낸 편지
1924년 12월 10일에 조부가 되는 琴祜烈이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는 자신의 손자 琴容國에게 지나친 학업으로 몸을 상하지 말 것과 안정된 생활을 위해 손부를 보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편지이다.
손자가 서울에 떨어져 유학하는데 거주와 음식 먹는 것 등의 생활이 걱정스럽고 내외가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안타까워 부부가 함께 서울에서 살도록 조처한다고 하였다. 혹 지나친 부부관계로 몸을 상하지 말기를 부탁하였다. 손부가 추운 날에 길을 떠나 몸을 상하지 않았는지 걱정하였다.
지나친 학업을 걱정하면서 西厓선생이 아들을 훈계하면서 “삼경이 되도록 자지 않으면 피가 심장으로 들어가지 않는다.”한 말을 인용하고 산수나 풀기 어려운 것들에 있어서 괴롭게 깊이 연구한다면 혹 뇌수와 정력을 상하게 되므로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기를 당부하였다. 마지막으로 건강하게 지낼 것이며 멋진 사내아이를 생산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였다.
발신자 琴祜烈(1853~1925)은 본이 奉化, 자는 景受로 梅軒 琴輔(1521-1584)의 10代胄孫이다. 수신자 琴容國(1905~1999)은 琴祜烈의 손자로 자는 重卿, 호는 素雲이다. 琴容國은 편지를 받을 당시 20살이었다.
琴祜烈의 아들 琴相基가 음력 1920년 3월 25일에 예천 용문면 금당실[金谷]에 종택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德龍齋를 건립했다. 따라서 이 편지의 작성시기인 1924년에 발신자 琴祜烈은 예천 금당실에 거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奉化琴氏世譜』, 奉化琴氏大宗會, 奉化琴氏大宗會, 2005.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