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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금호열(琴祜烈)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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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금호열, 금용국
작성지역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작성시기 1924
형태사항 크기: 27.5 X 50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한글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태자 봉화금씨 매헌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태자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24년 금호열(琴祜烈) 서간(書簡)
1924년 12월 10일, 조부가 되는 琴祜烈이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는 자신의 손자 琴容國에게 지나친 학업으로 몸을 상하지 말 것과 안정된 생활을 위해 손부를 보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손자가 서울에 유학하는데 거주와 음식 먹는 것 등의 생활이 걱정스럽고 내외가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안타까워 서울에서 부부가 함께 살도록 조처한다고 하였다. 지나친 부부관계로 몸을 상하지 말기를 부탁하고, 손부가 추운 날에 길을 떠나 몸을 상하지 않았는지 걱정하였다. 밤에 억지로 공부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사내아이를 생산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였다.
김정민

상세정보

1924년 12월 10일, 琴祜烈이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는 자신의 손자에게 지나친 학업으로 몸을 상하지 말 것과 안정된 생활을 위해 손부를 보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손자 琴容國에게 보낸 편지
1924년 12월 10일에 조부가 되는 琴祜烈이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는 자신의 손자 琴容國에게 지나친 학업으로 몸을 상하지 말 것과 안정된 생활을 위해 손부를 보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편지이다.
손자가 서울에 떨어져 유학하는데 거주와 음식 먹는 것 등의 생활이 걱정스럽고 내외가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안타까워 부부가 함께 서울에서 살도록 조처한다고 하였다. 혹 지나친 부부관계로 몸을 상하지 말기를 부탁하였다. 손부가 추운 날에 길을 떠나 몸을 상하지 않았는지 걱정하였다.
지나친 학업을 걱정하면서 西厓선생이 아들을 훈계하면서 “삼경이 되도록 자지 않으면 피가 심장으로 들어가지 않는다.”한 말을 인용하고 산수나 풀기 어려운 것들에 있어서 괴롭게 깊이 연구한다면 혹 뇌수와 정력을 상하게 되므로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기를 당부하였다. 마지막으로 건강하게 지낼 것이며 멋진 사내아이를 생산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였다.
발신자 琴祜烈(1853~1925)은 본이 奉化, 자는 景受로 梅軒 琴輔(1521-1584)의 10代胄孫이다. 수신자 琴容國(1905~1999)은 琴祜烈의 손자로 자는 重卿, 호는 素雲이다. 琴容國은 편지를 받을 당시 20살이었다.
琴祜烈의 아들 琴相基가 음력 1920년 3월 25일에 예천 용문면 금당실[金谷]에 종택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德龍齋를 건립했다. 따라서 이 편지의 작성시기인 1924년에 발신자 琴祜烈예천 금당실에 거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奉化琴氏世譜』, 奉化琴氏大宗會, 奉化琴氏大宗會, 2005.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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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924년 금호열(琴祜烈) 서간(書簡)

寄孫兒容國

自汝留京以來。每以居處飮食之節爲慮。而且以汝之
內外各離。爲第一關念處。故出於不得已야。蕩盡
財力。而爲此之計。然更思之。同居浸溺。決非衛生之法。
則於汝에。反不爲害耶。政所謂。此亦難彼亦難者也。
孫婦。一自入門以後。窃覸其擧止沈重。氣像賢淑。頗有將
來之望。甚可愛也。不可一日不見。而今送去千里之外。西望
雲天。悵然之懷。豈可言喩。況如此寒程。能不犯風寒否耶。
客裡辛酸。已無可言者。其苦狀。可豫料事。然汝若愛
重之和樂之。則亦可幸也。以工夫言之。西厓先生戒子
書曰。三更不寐。血不歸心。至如算術難解等事。若苦極
深究。則恐損腦髓精力。此豈强力致之哉。以上所言件
件。勿泛聽。而自今以後。勿過損心力고。隨力隨得。以爲
從容進就을。千萬是望。而且溫處愼攝。無恙好在而
幸得猉獜丈夫兒。好還鄕。是所望也。餘所欲言。雖多。
非遠書可悉。故只此萬一。不宣。
甲子十二月十日。祖父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