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4월 2일, 강필이 근황을 전하고 사직단자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23년 4월 2일에 宜齋 姜泌(1878~1942)이 근황을 전하고 辭職單子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가 멀고 험한 길을 와서 왕림해 준 것에 대해서 진실로 상대처럼 우의가 독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쉽게 할 수 있었겠느냐고 하면서 감격스러운 마음을 전하였다. 다만 그 자리에 사람이 아주 많았던 관계로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상대와 금방 작별하게 되었던 것에 대해 매우 아쉬운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 상대가 돌아간 뒤에 여독이 없이 건승한지 안부를 묻고 아들들 및 堂內 여러 사람의 안부도 물었다. 아울러 一汝(柳致好의 曾孫인 柳東夔) 형제가 돌아간 뒤에 평안하게 지내고 있는지도 물었다. 강필은 늙으신 양친께서 별다른 병환은 없으니 매우 기쁘고 다행하나, 자신은 손님이 많아 분주하던 상황이 겨우 안정되고 나서 外邪의 침노를 받아서 앓으면서 거동이 불편함은 물론 부모님의 걱정을 끼쳐드리고 있다고 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죄송스런 마음을 표하였다. 지난번 從君 집안에 생겼던 질병으로 인한 우환은 비로소 완치되어 없어졌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둘째아들이 일전에 大邱로 갔던 일에 대하여, 年少輩가 제멋대로 동요하는 것이 비록 온 세상의 풍조라고는 하나 유독 자신의 집안이 더욱 심하다고 하면서 그 애비인 자신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虎溪書院에 보낼 辭職單子는 자신이 곧바로 보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 편지에 동봉하여 보내니 인편에 제대로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발급인 강필은 자가 達源이고, 호는 宜齋이다. 白樵 姜夏奎의 손자이자, 晩山 姜鎔의 아들이다. 강용은 孔巖 柳致好의 딸인 全州柳氏와 혼인하여 姜泌을 낳았다. 따라서 류치호의 아들인 柳哲鎬는 강필에게 외삼촌이 되고, 류치호의 손자인 柳淵兢과 柳淵永은 강필의 사촌이 된다. 따라서 수신자는 이 둘 가운데 한 사람일 것으로 보이지만, 壽靜齋 집안과 관련지어 볼 때 表再從인 奮山 柳淵鱗일 가능성도 있다. 강필은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에 협조하였다가 옥고를 치른 바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