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3월 11일, 김종구가 근황을 전하고 한 번 모시기 위해 장인인 류연린에게 보낸 편지
1923년 3월 11일에 檀汕 金鍾九(1891~1974)가 근황을 전하고 한 번 모시기 위해 장인인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현재 상황을 알리고 있다. 轎行 뒤부터 안부를 알아볼 인편이 없었기에 그리운 마음을 이루 말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轎行은 결혼한 부인이 覲親 가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따뜻한 봄날을 맞아 장인과 장모님 및 아드님들, 가족들이 평안하게 지내는지 안부를 여쭈었다. 이어서 자신은 大慈의 積病이 근래 들어 심해져서 점점 百藥이 무효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하면서, 정성이 없는 자신이 어찌 神明의 가호를 바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애타는 심정을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다만 부친께서 무탈하시고 가족들도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였다. 아내는 다녀온 뒤에 무탈하게 지내고 있으며 종래의 虛歇 증상이 전에 비해 조금 차도가 있다고 하면서, 이번에 갔다 온 소득이 적지 않다고 하였다. 章이도 무탈하다는 소식을 아울러 전하였다.
끝으로 柳淵鱗이 근방으로 한 번 행차하실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고 하면서, 지금도 그러한 계획이 있는지 여쭈고, 방문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다. 막 水原으로 가는 하인이 있어 그로 하여금 안부를 물어 보낸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아드님이 전에 黃蠟을 부탁하였는데 마음먹은 대로 부쳐 보내지 못했었기 때문에 이번 편으로 1圓을 보낸다고 하였다.
발급인 金鍾九는 본관은 光山이고 자는 國聲, 호는 檀汕이다. 아버지는 金基東이고 光山金氏 禮安派 冑孫이다. 한학자로서 陶山書院 원장을 비롯하여 안동 지역 여러 서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檀汕集』이 있다. 그는 奮山 柳淵鱗의 사위로 全州柳氏와의 사이에 金昌漢, 金澤鎭, 金世漢 등의 자식을 두었다. 수급자인 柳淵鱗은 자가 見卿, 호가 奮山이고 西山 金興洛 문인으로 響山 李晩燾의 사위이다. 일제강점기 때 군자금 모금을 주동하였으며 유고 2권이 전해진다.
이 편지는 광산김씨와 전주류씨와의 혼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전주류씨는 의성김씨, 광산김씨 등 안동지역의 명문가문과 혼인을 하고 이를 통해 향촌사회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 서로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