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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이필호(李弼鎬)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23.4717-20130630.01032570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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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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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필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작성시기 1923
형태사항 크기: 22.3 X 43.5
장정: 낱장
수량: 2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23년 이필호(李弼鎬) 서간(書簡)
1923년 5월 30일에 이필호가 ‘補仁契’의 곗돈 모금 등과 관련하여 瓢谷에 보낸 편지이다. 처음 지난달 상대를 만났던 일을 회상하며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그러던 중에 상대의 편지를 받아 안부를 확인하여 이것이 세상의 복된 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눈병 난 근황을 이야기 하였다. 본론으로, 榮州 順興에 ‘보인계’의 장소가 차려져서 靑城書院과 鏡光書院의 사림들이 곗돈을 거두어 이미 그 장소에 보내진 사실을 알렸다. 따라서 ‘보인계’와 관련하여 서산 김흥락의 문하생들과 여러 문중의 군자들의 공론을 모아 臨川書院 또는 泗濱書院에 元所를 설립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상대와 李承奎가 간혹 만나서 잘 지내는지, 너그러운 도량을 가진 상대가 시끄러운 세상일에 휘말려 든 일 등을 언급하였다. 끝으로, 상대의 막내아들이 여기에 머물면서 배움을 청하였으나 그쪽에서 허락하지 않자 되돌아간 일, 喪 중에 있는仁吉聖叔 등에 대한 안부도 전하였다. 추신에서는, 편지가 두서가 없었다고 하며, 상대 再從氏의 喪事는 우리 유림의 운명과 관계된 것이니 매우 애통스럽다고 하였다.
김동현

상세정보

1923년 5월 30일, 守巖 李弼鎬가 補仁契의 契錢 모금 등과 관련하여 瓢谷에 보낸 편지
1923년 5월 30일에 守巖 李弼鎬가 補仁契의 契錢 모금 등과 관련하여 瓢谷에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지난달의 만남은 몇 년 동안이나 상대를 목마르게 그리워하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나, 이별한 뒤에 생각해 보면 이미 좋은 기회를 써버리고 만 것에 불과하니 서글프게 동쪽 하늘의 구름을 멀리 바라보매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는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이어 상대가 뜻밖에 인편으로 먼저 편지를 보내준 것에 대해 지극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였다. 또한 편지를 읽고서 상대가 평안하게 지내면서 날마다 연구하는 즐거움이 있고 그 아들도 여유롭게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 외에도 여러 사람들 모두 평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세상의 淸福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眼疾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경악스러운 일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무력감마저 느끼고 있는 자신에게 상대가 때때로 箴規를 베풂으로써 그것을 頂門一鍼의 자료로 삼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興州(榮州 順興)에 補仁契所가 차려져서 靑城書院과 鏡光書院의 士林이 契錢을 얼마간 거두어 이미 契所에 보냈다고 한다면서, 이는 興州의 입장에서는 매우 좋은 일이라고 하였다. 金興洛의 《西山全集》에 補仁契帖이 수록되어 있는데, 西山 문하에서 공부한 705명의 문인들이 등재되어 있다. 따라서 補仁契는 아마도 補仁契는 西山 金興洛의 문하로 구성된 契로 보인다. 그러면서 李弼鎬는 모두 스승에게서 도야된 門下이므로 尊門에서도 공론을 모아 兩門의 君子들이 臨川書院 등이나 泗濱書院에 元所를 설립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季休(硏巖 李承奎)와 상대가 간혹 만나서 잘 지내는지 묻고, 너그러운 도량을 가진 상대가 어찌하여 시끄러운 세상일에 휘말려 들고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지 안타까워하였다. 또한 언급했던 말은 우연하게 꺼낸 것인데 또한 이미 맞아떨어졌으니 바로 장난삼아 한 것이 진심으로 한 것과 같게 된 격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상대의 막내아들이 여기에 머물면서 배움을 청하였으나 그쪽에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하여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였으며, 喪中에 仁吉이 잘 버티고 있으며 聖叔 등도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는 등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추신에서는, 편지가 두서가 없었다고 한 뒤에 상대 再從氏의 喪事는 吾黨의 운명과 관계된 것이니 매우 애통스럽다고 하였다.
시기적으로 보아 수신자는 奮山 柳淵鱗(1868~1939)으로 보이나 확신할 수 없다.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23년 이필호(李弼鎬) 서간(書簡)

瓢谷 靖座 回納。
溪東 謹謝上。謹封。
前月奉款。適足慰數年飢渴之
抱。而別後思來。只是已經之好階梯
悵望東雲。正不禁自我誠薄之歎。
非意便風。先施惠帖。感舊論今。存
眷有加。顧此無似。何以得此於仁人君子
哉。擎讀屢回。不自知其何修。而仰酬至
意也。就伏審此際。
靖體啓居。連衛崇謐。日有觀玩之樂。
賢器侍學。優遊以外。各狀一一穩迪。釀得
來太和境界。斯世淸福。何以加此。戚姪。
潛伏窮廬。素乏情緖。而偶爾眼祟。挾旬
作苦。無一事可藉手者。似此情狀。何足仰聞
於愛我地耶。白紛之歎。零落之懷。吾儕
可相憐者。而惟日聞見。無非可驚可愕底事。則
莽鹵殘廢。何以能扶竪頹波之勢。而有此非倫
之責也。顧吾座時惠箴規。以爲頂門下針之
資。如何。補仁契自興州已成所。而靑鏡士林。亦
多少收合。已送于右所云。於興州甚盛事。而於
靑鏡無乃欠了耶。吾黨之士。孰非當日鑪鞴
中人。而今於此事。專靠一方。有若岸視者然。得
無自愧於心乎。望須恢公於尊門。兩門好義
之君子。設立元所於兩臨川中。或泗濱等處。以爲
便宜之方。如何如何。季休間或相對。而好笑否。見今
吾黨日孤。古道難見。無處不鬧。氣像極不佳。豈以吾座
寬弘之量。混入於這中。而不自覺耶。責善之道。吾
所不敢。而妄恃情誼。亦不敢自外。故冒此煩瀆。倘
可休咎而採納否。云云之說。偶然之發。亦旣相符。
正所謂弄假成眞。阿姪惟從吾意爲心。其沕然可知。何
必更事乎多言也。季允君聞欲留此請學。而彼中不肯
許納。故落寞而歸。悵悵可言。仁吉哀以姑支。聖叔賓從
亦依耳。餘。在允君口。姑此。不備謝禮。伏惟回照
癸亥 五月 晦日。戚姪 李弼鎬 拜謝。

語失序矣。再從氏丈喪事。係是氣數。痛悼何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