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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류연린(柳淵鱗)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22.4717-20130630.0103257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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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연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22
형태사항 크기: 22.7 X 47.4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22년 류연린(柳淵鱗) 서간(書簡)
1922년 11월 15일, 류연린이 자신의 공부 상황을 전하고 방문 계획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격조하던 중에 당신의 편지를 받아 감사하고 자신이 당신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문란하게 지내서 공부의 진전이 없고 집안에서 내려온 업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고 하고 있다. 끝으로 당신께서 저번에 편지로 운운하신 家學은 자신을 부끄럽게 하였으며 봄이 되면 고모를 찾아뵙고 강운 선생의 사당을 배알할 것이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922년 11월 15일, 류연린이 자신의 공부 상황을 전하고 방문 계획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1922년 11월 15일에 奮山 柳淵鱗(1868~1939)이 자신의 공부 상황과 방문 계획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격조하던 중에 당신의 편지를 받아 감사하고 자신이 당신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였다. 당신을 만나려고 계획하였으나 여러 가지 일로 그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니 그 죄송스러움을 어찌 적겠냐고 하고 있다. 이어서 상대방과 그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이어서 柳淵鱗은 근래 전혀 스스로를 검속하지 못하여 문란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한창 나이에 가는 세월을 아까워하며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는 일을 소홀히 하여, 집안에서 전해 내려 온 遺業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으니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상대가 편지에서 家學에 대해 운운한 것은 족히 자신들로 하여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했다고 하였다. 따뜻한 봄이 되면 고모를 찾아뵙고 姜橒 선생의 사당을 배알하고 小室의 꼭대기에 올라 좋은 경치를 바라보고 싶다고 하였다.
발급인 柳淵鱗은 자가 見卿, 호가 奮山이고 西山 金興洛 문인으로 響山 李晩燾의 사위이다. 일제강점기 때 군자금 모금을 주동하였으며 유고 2권이 전해진다. 또한 편지에 등장하는 松西를 통해 수취인이 진주강씨 임을 알 수 있다. 松西는 姜橒(1772~1834)의 호이다. 그는 1798년(정조 22)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807년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正字典籍持平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821년 이후로 관직에서 물러나 여러 講會에 참석하여 『心經』 ‧ 『近思錄』등을 강의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후에 홍문관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이 편지는 전주류씨와 진주강씨 사이에 교류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진주강씨와 전주류씨는 혼맥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柳淵鱗에게 晉州姜氏 집안으로 시집간 고모가 있었던 듯하다. 즉 영남 지역의 사족들은 혼인을 통해 향촌사회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했던 것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22년 류연린(柳淵鱗) 서간(書簡)

謝狀上。
春間一緘。出於積歲阻信之餘。自我修
覆。宜趁不稽。而于今幾月。懶廢成痼。使
吾座悠悠渭水之思。竟至隻施望虛。居常
悚仄。奚啻逋負山積。今此一書。又是包寬豁
度。愧感猶屬歇后。然於吾座也。則旣蒙不
較。反作自幸之資。而但此漢之起躬晉候於
姑氏無恙之日。仰觀齊眉。合德於緋玉之
地。此是一生積營。而未踐者。窮遁之至。百巧
難飾。罪悚之餘。尙何可文也。更伏諗際。玆
雙闈氣力。神護康寧。
省餘體事崇毖。膝下機雲軾轍。想可
以怡歡而應對矣。竊念吾座。以老萊之服
侍石奮之庭。又有此振兟之樂。則是忘我刑
部大爺之一生種積。始發於吾座矣。表
內奚間焉。爲之仰祝萬萬。內從近狀。只是沒
檢攝。頹散節度。而牛毛之苛。龜背之刮。
難支而易觸。所以撑扶於瞿塘傾楫
者。槩是邇來日用餘。何足定見。今民
彛物則。都喪無餘。最是芳年之可
惜光陰者。擧事悠泛。家傳之影
響。無所杞宋。是豈細故也。示喩擩
詩染禮云云。足使渠輩愧蹙耳。
春和後。欲策款段。以贖宿逋於
姑氏。祗謁松西夫子之廟。因以登小
室之頂。快望霞烟。此其丕擬也。豫
卜之言。能如意耶。松堡係序之祀。不
勝迭遷之感。而又有惹起之懷。且吾
座一握。又失此會。悵悵可言。餘。燈
下草草。不備謝禮。
情照。
壬戌復月十五日。內從柳淵鱗。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