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7월 24일에 아버지 琴祜烈이 아들인 琴相基에게 밀을 운반하는 일과 아들이 있는 곳의 주변 상황을 묻기 위해 보낸 편지
1921년 7월 24일에 아버지 琴祜烈이 아들인 琴相基에게 밀을 운반하는 일과 아들이 있는 곳의 주변 상황을 묻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밖에 나가 있는 자신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자신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밖에서 살피고 있는 일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더위가 심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川城에 갈 수 없어 몹시 우울하며 새로 들인 며느리의 병이 잘 치료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고 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있는 곳은 19일에 한 쟁기 비가 내려 우선 가뭄은 면하였으나 다른 지역은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하니 농사 형편이 걱정스럽고 곡식가격은 日和가 한 섬에 거의 8원에 이른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禾洞의 終祥이 내일이어서 심정을 적어 보내니 그 일을 잘 살펴봐줄 것을 당부하고 자신은 내일 川城에서 차를 타고 갈 계획이라고 하고 있다.
끝으로, 眞麥 즉 밀을 어떻게 운반해 갈 것인지를 묻고 있다. 만약 밀을 운반 하려거든 지금 편지를 가지고 간 사람 편에 몇 마리 소를 딸려 보낼 것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甘泉從을 함께 보냈으면 좋을 것 같으니 자신을 대신해 琴瑩基를 보내 이 일을 주선하는 것이 어떠하겠냐는 의견을 제시하고 만약 형편이 안 된다면 너희 형제들이 의견을 따르겠다고 하며 편지를 마친다.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川城은 봉화군 乃城面의 이칭이다. 내성면은 과거 奈城縣으로 안동군에 예속되어 있었으나 1906년 봉화군 奈城面으로 되었다가 1914년 乃城面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봉화군 봉화읍이다. 발급인 琴祜烈(1853~1925)은 本은 奉化, 字는 景受로 梅軒 琴輔(1521-1584)의 10代 胄孫이다. 수취인 琴相基는 本은 奉化, 字는 聖洛, 號는 石湖이고 忠淸道 觀察府 主事를 지냈다. 配는 眞城李氏 通德郞 李承魯의 딸이고, 後配는 羽溪李氏 李鍾磬의 딸이다. 저서로는 『大字帖』 2책, 『金剛山遊錄』이 있다.
이 편지로 집안에서 어떠한 일을 시행할 때 어떻게 의견을 교환했는지 알 수 있으며 가뭄으로 인해 당시의 물가가 변동되는 모습이 드러난다. 따라서 편지는 마을사, 미시사, 경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사료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奉化琴氏世譜』, 奉化琴氏大宗會, 奉化琴氏大宗會, 2005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