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월 17일, 南孝順이 시집간 사촌 여동생을 잘 보살펴 달라고 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21년 1월 17일에 遲庵 南孝順(1863~1942)이 시집간 사촌 여동생을 잘 보살펴 달라고 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지난해 섣달에 상대가 보내주신 편지에 대해 해가 넘도록 답장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송구스런 마음과 함께 그리운 마음을 전하였다. 방문한 羲賓인 石隣 金寅欽을 통해서 대체적인 소식을 듣기는 하였으나 여러 날이 지난 일이 되어버렸다고 하면서, 상대 및 아드님들, 사촌 누이동생의 안부를 새로 물었다. 특히 연약하고 어리석은 사촌 누이동생이 상대 집안에 근심을 끼치는 일이 많을까 걱정스럽지만 오직 그 시아버지께서 돌봐 주시기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 그녀에 대한 배려를 당부하였다. 그녀를 시집으로 떠나보낼 때 온 집안사람들이 係戀했던 일을 회상하며 그것은 옛사람이 3일 밤 동안 촛불을 끄지 않았던 심정보다 더 간절한 것이었다고 하였다. 편지 본문의 "三夜不去火"는 이른바 "三夜不息燭"으로, 시집간 여식과 이별한 것을 생각하여 3일 밤 동안 친정에서 촛불을 끄지 않았다는 뜻이다. 자신의 집안에서 혼사를 논하는 일은 石峴 以西의 집안과는 다시 할 수 없으나 하늘이 정해준 인연과 관계되는 문제이므로 잘라서 말할 수 없다고 하고, 이와 관련하여 상대가 그간에 신경을 써준 노력에 대해 매우 감사하다고 하면서, 뜻대로 일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덧붙여, 그 사이 한두 집안과 혼담이 있었으나 아직 진전은 없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남효순은 자신의 어버이께서 섣달부터 병환으로 인해 항상 자리에 누워서 지내시는데 회복될 기약이 없으니, 애타고 두려운 마음을 이루 말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從叔께서는 근래 완쾌되셨고 형제들은 한결같이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끝으로, 村警(마을에 번지는 돌림병을 가리키는 듯함)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상대 아드님의 방문은 자신이 가능한 날짜를 통보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당부하였다.
피봉의 "槐市"는 현재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른바 寧海 注谷宅이 자리하고 있다. 곧 발신자인 南孝順의 고택이다. 남효순은 자가 達夫, 본관은 英陽으로, 西山 金興洛의 문인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