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12월 9일, 琴錫基가 질부의 질병에 대한 걱정과 賭租 문제를 琴祜烈에게 전하는 편지
1920년 12월 9일, 琴錫基가 질부의 질병에 대한 걱정과 賭租 문제를 琴祜烈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금석기는 처음 작은아버지 금호열과 영기의 안부를 물으며 편지의 첫 머리를 시작한다. 자신은 묵은 병이 재발하였으나 약을 쓰지 않고 나아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黃甥 집의 酉谷 姪婦가 脚痛과 寒濕, 血熱의 증세를 치료 받았는데 완쾌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전하였다. 中兒가 東面의 토지를 2천냥에 京城府 樂園洞 224번지 金萬順에게 潛賣하였다고 전하며, 남은 땅들도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遠塘의 金驥相이 敗家하여 그가 소작하던 논의 작년 조 作錢을 어찌해야 할지 여쭈었다. 馬場의 崔斗明이 말하길 김기상의 매부 동생인 尹道天가 작인인 되길 바란다고 하였다. 올해의 賭租를 서로 바꾸자고 한다면 윤천도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윤천도의 일은 최두명이 일체 담당하고 이번 20일 내에 문서를 주고받으면 된다고 하였다. 문서는 김씨에게 먼저 보내지 말고 文村에 보내어 최두명을 시켜 윤도천에게 보내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案山의 집문서[家券]와 솥[食鼎]과 곡식[穀包] 등 모두 明五의 소유가 되었는데 그는 5푼 가운데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하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
발신자인 琴錫基(1865-1924)는 初諱는 中基이고, 字 洛彦이다. 수신자는 석기의 숙부 琴祜烈(1853-1925)로 본관은 奉化이고, 자는 景受이다. 그의 아들인 琴瑩基(1889-1966)는 자가 聖穆이다.
이 편지는 일제강점기의 사회 · 경제사를 알아볼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첫째, 지주가 소작인을 고용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즉 지주가 직접 소작인과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닌 중간자를 통해 문서를 주고받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곡물과 같은 현물로 도조를 납부하지 않고 현금으로 환전하여 납부하였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둘째, 문서에서 나오는 지명이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행정구역이 개편된 이후의 주소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