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7월 그믐에 南朝馹이 답장이 늦은 것과 그곳으로 갔을 때 들르지 못한 것을 해명하기 위해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
1920년 7월 그믐에 南朝馹이 답장이 늦은 것과 그곳으로 갔을 때 들르지 못한 것을 해명하기 위해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겨울 되돌아 갈 때 눈보라가 몰아쳐 극도로 곤란을 겪었을 것인데도 오히려 정신을 깨워 일으켜 편지를 부쳐 못다 한 정회를 말하니 늙어도 게으름이 없는 지극한 뜻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마땅히 답장하여 성의에 보답하여야 하는데 혹 인편을 잃거나 혹 게을러 지연하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면서 杜甫의 “사귀어 노는 사람을 향하여 너무 만사를 게을리 하네[太向交遊萬事慵]”의 句를 인용하며 자책하였다.
장마가 이전에 없이 오는데, 책을 읽으며 이치를 터득함이 있는지 자제의 학문에 진전이 있는지 궁금해 하였다. 자신은 기력이 칠팔 분 감소되어 공부가 없고 날마다 鼎兄과 상대하여 이야기 나누면서 날을 보낼 뿐이라고 하였다. 여름에 다섯 번이나 江村으로 갔었지만 갈 때마다 비를 만나 큰길로만 지나갔고 피곤한 나머지 병을 얻어 길에서 신음하여 바로 돌아왔으며 돌아올 때는 머무는 곳을 바라보고 어정거리다가 素溪로 갔다고 하였다. 스스로가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며 답장이 늦은 죄와 질러 지나간 죄에 대해 용서를 바라고 예전처럼 편지를 자주 해주기를 바라였다.
발급인 南朝馹은 자가 德郵이고 寧海 仁良洞에 거주하였다. 수취인인 李鉉謨(1853~1927)는 자가 景贊이고 호는 仁廬 또는 亦人齋이며 李壽五의 제 3자이다. 寧海 仁良里에서 태어났고 1896년에 英陽 石保面 做士洞으로 이주하였다. 『仁廬處士遺稿』가 전한다.
仁廬處士遺稿, 李鉉謨, 2003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