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윤 7월 28일, 琴祜烈이 아들 琴相基에게 좋은 터를 구하는 어려움과, 가족들이 복용할 약에 대한 주의해야 할 내용의 편지
1919년 윤 7월 28일, 琴祜烈이 아들 琴相基에게 좋은 터를 구하는 어려움과, 가족들이 복용할 약에 대한 주의해야 할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 번째는 좋은 터를 구하는 어려움 이다. 筏芳을 지나 泥田과 豊基에서 하루씩 묵은 후 興州에 도착하여 鳳山을 감상하였다. 金谷과 비교하여 生理는 沃野가 넓고 땔감이 넉넉하고, 땅값이 금곡에 비해 절반이며, 옛 田庄과 멀지 않아 편리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물과 토지가 좋지 않은 듯 하고, 사람들과 교제하는데 불편하다고 하였다. 또 각 고을마다 땅과 물건 값을 비교하며 터를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두 번째로 가족들 각자가 복용할 약에 대해 말하였다. 아들 금상기는 三陰煎을 복용해야 하는데 약재인 當歸와 芍藥를 고르는 법을 알려주며 藥主와도 상의해 보라고 하였다. 어미도 추위가 오기 전에 大營煎을 복용하고, 明奎는 인삼을 1전 추가하여 小營煎을 복용 하라고 하였다.
발신자 琴祜烈(1853-1925)은 본관은 奉化이고, 자는 景受이다. 수신자 琴相基은 금호열의 아들이다. 본관은 봉화이고, 字는 聖洛, 號는 石湖이다. 忠淸道 觀察府 主事를 지냈다. 『大字帖』 2책, 『金剛山遊錄』을 지었다.
일반적으로 지명은 해당 지역민들이 실제로 부르는 명칭과 법정명이 다른 경우가 많다. 예컨대 1913년부터 작성된 『토지조사부』를 보면 개편된 행정구역의 주소 또는 기존에 주민들이 사용하였던 주소들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편지 내용 속에 나오는 지명은 그 당시 거주민들이 실제로 불렀던 명칭이기에 지역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토지조사부』와 연계하여 지명을 파악하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