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월 14일에 鄭建模가 시집간 여조카를 만나본 후의 심정을 전하기 위해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
1919년 1월 14일에 鄭建模가 시집간 여조카를 만나본 후의 심정을 전하기 위해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이다.
뵌 지 오래되었지만 항상 흠모하고 있다고 하였다. 새로 姻好를 맺어 마음이 더욱 절실하다고 하였다. 新元에 모든 분의 안부가 건강한지를 물었다. 자신은 멀리 나가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새해를 맞아 재미가 있으나 國哀로 통분이 거듭되고 또 숙부의 환후가 열흘이 지나도록 차도가 없어 심정이 말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하였다.
다만 아비 없는 女姪이 孑孑히 생장해서 3년 만에 보았는데 시원한 眉目이 이미 훌륭한 家人이 되었으며 또한 데리고 온 아이가 보기에 기특하다고 하였다. 이웃 마을에 역병이 가시지 않아 만류하지 못하고 中路에 있는 同行을 따라 돌려보냈다고 하였다. 뒷날 다시 보내주기를 바라였다.
발급인인 鄭建模(1866~1935)는 본이 東萊이고 자가 可範이며 號가 匏山이다. 부는 鄭翼煥이며 英陽에 거주하였다. 수취인인 李鉉謨(1853~1927)는 자가 景贊이고 호는 仁廬 또는 亦人齋이며 李壽五의 제 3자로 寧海 仁良里에서 태어나 1896년에 英陽 石保面 做士洞으로 이주하였다. 『仁廬處士遺稿』가 전한다. 동래정씨의 딸과 결혼한 사람은 仁廬 李鉉謨의 맏형 李鉉成(1847~1903)의 손자인 李秉坤(1904~1959)으로 추측된다. 이병곤은 鄭述模의 딸과 결혼하였다. 이병곤의 父 李元浩(1878~1908)는 일찍 죽어 1919년 당시는 이병곤의 父와 祖가 모두 사망한 시점이다. 따라서 이병곤의 결혼 주선을 이현모가 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