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3월 6일, 김기동이 근황을 전하기 위해 류연린에게 보낸 편지
1918년 3월 6일에 東洲 金基東(1874∼1930)이 근황을 전하기 위해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있다. 하루 동안에 서로 만나서 회포를 충분히 풀었지만 이별한 지 며칠이 되니 섭섭한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고 하였다. 돌아가는 아들 편에 당신께서 편지를 부치지 않았으나 아들에게 물어서 안부를 살피게 되니 편지를 받은 것과 다름없이 위로가 되어 근심이 풀어졌다고 하였다. 柳淵鱗 및 가족들이 평안하고 며느리가 보살핌을 입어 한결같이 지내고 있으며 石漢도 무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제멋대로 굴고 버릇이 없는 石漢을 柳淵鱗이 너무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버릇이 더 없어지게 될까봐 걱정된다고 하면서, 부디 훈육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전하고 있다. 金基東 자신은 지난번에 내앞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시 安東의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가 그저께 비로소 귀가했는데 어버이와 가족들이 그럭저럭 무탈하니, 오랫동안 집안을 떠나 있던 자신에게 매우 다행스런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말을 탔던 것으로 인하여 자신의 腫氣가 재발할 기미가 있으니, 매우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타고 갈 것을 아직도 구할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무실의 敬晦가 기르고 있는 말을 내다 판다하여 자신이 잠깐 보았는데 튼실하니 가까운 곳은 타고 갈 만하다고 하면서, 괜찮은 지 시험해 보고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발급인 金基東은 자는 木卿, 호는 東洲이고 본관은 光山, 본적은 禮安이다. 광산김씨 禮安派의 종손이다. 문장력이 뛰어났으며 문집으로는 『東洲文集』이 있다. 金基東과 柳淵鱗은 서로 사돈지간이다. 金基東의 아들 檀汕 金鍾九가 全州柳氏와 혼인하였는데, 全州柳氏는 柳淵鱗의 딸이다. 수취인 柳淵鱗은 자가 見卿, 호가 奮山이고 西山 金興洛 문인으로 響山 李晩燾의 사위이다. 일제강점기 때 군자금 모금을 주동하였으며 유고 2권이 전해진다.
이 편지는 광산김씨와 전주류씨와의 혼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전주류씨는 의성김씨, 광산김씨 등 안동지역의 명문가문과 혼인을 하고 이를 통해 향촌사회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 서로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