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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이성구(李性求) 외 1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18.4717-20130630.010325700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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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성구, 이덕구, 류연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18
형태사항 크기: 25.9 X 60.3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8년 이성구(李性求) 외 1인 서간(書簡)
1918년 9월 16일에 이성구이덕구가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답장을 늦게 보내 죄송하다고 전며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형제들은 집을 수리하는데 골몰하고, 이덕구는 일본 경찰로 인해 곤경을 겪고 있다고 하였다. 탑동과의 혼담은 승낙을 받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암정에 비석을 세우는 일이 다음달 보름으로 정해졌는지 물으며 그때 상대방을 만날 것이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순주

상세정보

1918년 9월 16일, 李性求李悳求가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18년 9월 16일에 李性求李悳求가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8월 7일에 상대가 작성하여 보내준 편지에 대해 답장이 늦어진 점을 사과하였다. 인편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의논해서 정할 것에 대해 결말을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어느새 가을도 거의 끝나가고 단풍과 국화가 한창 무르익은 이때에 상대 형제 등이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上堡의 喪事로 인해 기가 막히고 말았다고 하였다. 兩家의 근래 쇠락한 형편으로는 한 가닥 남은 氣脈을 부지할 수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이다지도 궁색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느냐고도 하였다. 이어, 자신들 형제는 옛집을 수리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고, 특히 이덕구는 왜경의 핍박으로 곤경을 겪고 있다고 하면서, 조금도 세상사는 재미가 없다고 하였다. 이덕구는 왜경의 핍박에 대해 격렬히 대항하는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고 하면서,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塔洞과의 婚談은 편지와 만남을 통해서 이미 七八分의 허락을 얻어내기는 하였으나 끝내 快諾을 받지는 못했다는 소식도 전하였다. 끝으로, 巖亭에 비석을 세우는 일이 과연 내달 보름께로 정해졌는지 묻고 그때 상대를 뵐 계획이라고 하였다.
肯庵 李敦禹金在恭의 딸(義城金氏, 葛川 金煕周의 손녀), 金康壽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결국 후사를 잇지 못하고 晩園 李重明을 후사로 들였는데, 발신자 李性求李悳求는 곧 李重明의 아들들이다. 시기적으로 이 편지의 수신자는 奮山 柳淵鱗(1868~1939)일 것으로 보인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김순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18년 이성구(李性求) 외 1인 서간(書簡)

朴谷 棣座下 回納
吾輩雖不能體古筍束。而其門下傾向。則固
有在矣。向於無何。承拜八月初七日所
惠書。當趁修謝儀。以舒邇來阻積之懷。
而但更遞未易。且其所商確者。卒難究竟。
延拖至此。逋慢之誅。烏敢自逭也。居然秋
事垂功。楓菊政酣。謹問比來
棣床動止崇衛。堂廡諸節皆均護
否。上堡慘逝。令人氣塞。吾兩家近來衰
相。宜不能保有一線殘脉。而豈知如此之
窮且極耶。悼歎無已。弟兄汨於舊第之修
補。弟困於警署之壓迫。頓無生世意況。
而第念此事。畢竟爲百世禍蘖。則聊當
背城一戰。任其興亡之外。更無他道理。日
前已告訴於法所。當次第入聞矣。塔洞
說。以書以面。今已得七八分頷可。而終未有
快。只竢其天緣之重而已。巖亭立石。果以
來月望間耶。其時當面敍。不備謝禮。
戊午九月十六日。弟 李性求悳求 謝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