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6월 4일, 金基東이 수해 등과 관련하여 柳淵鱗에게 보낸 편지
1918년 6월 4일에 東洲 金基東(1874∼1930)이 수해 등과 관련하여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손자가 태어난 지 21일이 지났음을 어제 들었으나 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탐문하지 못했으니 이것이 과연 常情이겠느냐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였다. 이어 柳淵鱗과 그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특히 해산한 며느리가 비쩍 마른 몸으로 무사히 몸을 풀 수 있었던 것에서 柳淵鱗이 제대로 보호해 주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고, 최근에 그녀가 후유증이 없이 회복되어 가고 있는지 물었다. 또한 손자놈이 어떤 모습을 하고 태어났는지 궁금해 하였다. 石漢의 안부도 물었다. 접때 花城(安東)에서 온 사람이 이르기를 北流가 마치 바다가 뒤집히는 듯하였지만 南川 일대만은 괜찮다고 했다고 하면서, 柳淵鱗의 田庄은 홍수 피해를 면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였다.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가르쳐달라고 당부하였다. 자신은 어버이께서 평안하게 지내시는 날이 늘 적고 자신도 瘇濕이 창궐하여 정강이와 허리가 巖面이 되었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이로 인하여 衣冠을 폐하고 지내는 상황을 언급하였다. 끝으로 홍수의 피해 상황을 다시 한 번 언급하고, 방문 계획이 차질을 빚는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였다. 추신에서는 孔厚의 죽음에 대해 슬픈 마음을 표하고, 며칠 전에 써두었던 이 편지에 최근 소식을 추가하여 알려 주지 못하는 것에 양해를 구하였다. 藥匣 1개를 올린다고 하였다.
金基東과 柳淵鱗은 서로 사돈지간이다. 金基東의 아들 金鍾九가 全州柳氏와 혼인하였는데, 全州柳氏는 柳淵鱗의 딸이다. 金鍾九는 柳淵鱗의 맏사위이다. 金基東은 본관이 光山으로, 後凋堂 金富弼의 冑孫이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