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6월 24일, 柳淵龍이 상대의 딸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사돈 李中洛에게 보낸 편지
1917년 6월 24일, 柳淵龍이 상대의 딸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사돈 李中洛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자신의 탓으로 질부에게 화가 미쳤다고 하면서 자책하고 하늘을 원망하였다. 자신이 집안에서 몇 해 동안 질부를 보아오면서 마음가짐이 부드럽고 베풀기 좋아하며 타고난 성질이 차분하여 집안의 복의 바탕이 되리라 굳게 믿으며 의심이 없었다고 하였다. 봄의 행차는 손가락을 꼽아 기다려서 한 것인데 조물주의 시기를 당했다고 하면서 하늘을 원망하였다. 산에 안장하고 돌아옴에 분통하고 비로소 천하에 어려울 일이 없음을 알았다고 하였다. 함께 당한 처지에 할 말이 없으며 자신이 할 일은 ‘習忘’ 두 글자에 해당될 뿐이라고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 안정될 것이라고 하며 몸을 상하지 않기를 바라였다. 더위를 무릅쓰고 다녀간 從氏兄은 괜찮은지 물었다.
상대의 사돈이 되는 자신의 동생은 마음이 흩어져 거두어 들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산 사람을 슬퍼하며 전혀 살 뜻이 없다고 하였다. 비록 상대하여 말하고자 하지 않더라도 어찌 차마 상대하지 않고 끊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먼저 방문하는 것이 도리일 듯한데 더위가 심해 후일을 기다려 한번 나아가 원통한 마음을 풀 생각이라고 하였다.
발급인인 柳淵龍(1864~1943)은 본이 全州이고 자는 聖五이며 호는 一澗이다. 柳定鎬의 아들이다. 수취인인 李中洛(1875~1947)은 본이 載寧이고 자가 宅汝이며 호가 做隱이다. 仁廬 李顯模의 아들이다. 죽은 류연룡의 질부는 그의 조카 柳東瀚의 아내이며 이중락의 딸로 이 편지 열흘 전인 6월 14일에 사망하였다.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