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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류연룡(柳淵龍)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17.4717-20130630.0659257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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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연룡, 이중락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갈전리
작성시기 1917
형태사항 크기: 26.9 X 55.8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일월 재령이씨 인려후손가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7년 류연룡(柳淵龍) 서간(書簡)
1917년 6월 24일, 柳淵龍이 상대의 딸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사돈 李中洛에게 보낸 편지이다. 질부가 마음가짐이 부드럽고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며 차분하여 복의 바탕이 되리라 굳게 믿었는데, 손가락을 꼽으며 기다려서 한 봄의 행차가 빌미가 되어 죽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마음을 안정시키고 몸이 상하지 않기를 바라였다. 더위를 무릅쓰고 다녀간 從氏兄은 괜찮은지 물었다. 상대의 사돈이 되는 자신의 동생의 비참한 심정을 전하였다.
김정민

상세정보

1917년 6월 24일, 柳淵龍이 상대의 딸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사돈 李中洛에게 보낸 편지
1917년 6월 24일, 柳淵龍이 상대의 딸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사돈 李中洛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자신의 탓으로 질부에게 화가 미쳤다고 하면서 자책하고 하늘을 원망하였다. 자신이 집안에서 몇 해 동안 질부를 보아오면서 마음가짐이 부드럽고 베풀기 좋아하며 타고난 성질이 차분하여 집안의 복의 바탕이 되리라 굳게 믿으며 의심이 없었다고 하였다. 봄의 행차는 손가락을 꼽아 기다려서 한 것인데 조물주의 시기를 당했다고 하면서 하늘을 원망하였다. 산에 안장하고 돌아옴에 분통하고 비로소 천하에 어려울 일이 없음을 알았다고 하였다. 함께 당한 처지에 할 말이 없으며 자신이 할 일은 ‘習忘’ 두 글자에 해당될 뿐이라고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 안정될 것이라고 하며 몸을 상하지 않기를 바라였다. 더위를 무릅쓰고 다녀간 從氏兄은 괜찮은지 물었다.
상대의 사돈이 되는 자신의 동생은 마음이 흩어져 거두어 들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산 사람을 슬퍼하며 전혀 살 뜻이 없다고 하였다. 비록 상대하여 말하고자 하지 않더라도 어찌 차마 상대하지 않고 끊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먼저 방문하는 것이 도리일 듯한데 더위가 심해 후일을 기다려 한번 나아가 원통한 마음을 풀 생각이라고 하였다.
발급인인 柳淵龍(1864~1943)은 본이 全州이고 자는 聖五이며 호는 一澗이다. 柳定鎬의 아들이다. 수취인인 李中洛(1875~1947)은 본이 載寧이고 자가 宅汝이며 호가 做隱이다. 仁廬 李顯模의 아들이다. 죽은 류연룡의 질부는 그의 조카 柳東瀚의 아내이며 이중락의 딸로 이 편지 열흘 전인 6월 14일에 사망하였다.
김정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17년 류연룡(柳淵龍) 서간(書簡)

省式。淵龍抆淚言。淵龍獲戾招殃。延及
於賢婦。慈天覆庇之側。天可忍天可
忍乎。於斯人也。有深諦於膝下者。有
年矣。宅心柔惠。稟質又安詳。竊計爲
私門福祿之基。執契無疑矣。春間一
行。寔出於空饋之故。而屈指顒俟者。竟
爲造物者撕壞。有如泡漚蟪蛄之須臾變
幻。拭淚悵惻。詰天何及。靑山埋璧。古或
有之。而舍此之外。更無他道。不得已抛棄
窮阡。與土爲一者。其情誠薄乎。節節憤
痛。始知天下無難處事矣。同一所遭之
地。何暇有別般獻規。而習忘二字之外。更
何所處而得宜哉。時移而境稍靜矣。伏
惟此際。
壽位節宣不瑕有損。
服中起居不以慈刃傷害。從氏兄冒炎
往返無餘憊否。以不忍聞底區區。不忍
說底遠外。泚筆者自不禁淚簌簌下也。
淵龍。屬此境界。只自反躬自責而已。更何覼縷。而惟親節疚
損。卯君精魄遁散。收回難得。悼死恤存。了無生意。奈何。縱不
欲相對無言。豈可忍不相對而絶乎。坐請固所未敢。先
訪似合道理。然暑炎如此。當俟後看。一晉敍寃臆爲計
耳。餘眼淚手澁。不備狀禮。伏惟
服照。狀上。
丁巳 六月 念四。弟 朞降人 柳淵龍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