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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김기동(金基東)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17.4717-20130630.010325700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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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기동, 류연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17
형태사항 크기: 19.2 X 19.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7년 김기동(金基東) 서간(書簡)
1917년 윤달 8일에 김기동이 안부를 전하고 며느리의 친정나들이가 취소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류연린에게 보낸 편지이다. 안동에서 만난 지 열흘에서 보름 정도가 지났는데, 우환 중에서도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어준 상대방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자신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결국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며, 모친은 담증으로 고생하면서 약효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서 아들이 상주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에 대한 염려스러운 마음과 우환 중에 밤낮으로 애쓰는 며느리에 대한 마음을 나타내었다. 며느리의 친정나들이에 대해서는 형편상 억지로 움직일 수 없는데다 일을 계획할 상황이 못 되니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917년 5월 8일, 金基東이 안부를 교환하고 며느리의 覲行이 무산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柳淵鱗에게 보낸 편지
1917년 5월 8일에 東洲 金基東(1874∼1930)이 안부를 교환하고 며느리의 覲行이 무산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安東에서 정담을 나눈 지 이미 旬望을 넘겼는데, 柳淵鱗이 우환 중에 있으면서도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물어주니 버리지 않는 후의를 입었다고 하였다. 아들(金鍾九)에게 보낸 편지를 대신 뜯어보고서 柳淵鱗이 평안한 줄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吉禮가 머지않았으니 모든 일이 정신없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재미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金基東 자신은 몹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였는데, 安東의 일로 그 사이 한 번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였으나 禍機가 결국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어머니께서 痰火로 고생하시면서 약효를 보지 못하는 상황을 언급하고 애타는 심정을 전하였다. 尙州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金鍾九의 일에 대해 염려하는 마음을 전하고, 비록 큰 병은 없으나 우환 중에 주야로 애를 쓰는 며느리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도 표하였다. 覲行에 대해서 일전에 春府丈을 만나서 대략 말하였고 며느리의 편지에서도 상세히 말한 바 있으나, 이미 주저하여 억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또한 覲行을 경영할 형편도 아니라고 하면서,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金基東柳淵鱗은 서로 사돈지간이다. 金基東의 아들 金鍾九全州柳氏와 혼인하였는데, 全州柳氏柳淵鱗의 딸이다. 金鍾九柳淵鱗의 맏사위이다. 金基東은 본관이 光山으로, 後凋堂 金富弼의 冑孫이다.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17년 김기동(金基東) 서간(書簡)

花邸奉晤。已逾旬望。而坐在憂
愁中。專价垂訊。了荷不遺。代坼
抵兒書。以審
侍體萬相。吉幹不遠。凡百擾惱。皆
是味況事。
喬旆日前拜晤於梨洞霎時也。所敍
者只是向我憂歎語。其間尙未返稅。則
當轉修諸處人事。爲多日矣。弟。此
來運遭。知是生來阨境。花府事。其
間。又有一番往返。而撞來禍機。不知稅
駕何地。慈省又以痰火劇患澒洞。已
逾浹旬。夜不交睫。已七八日。日用湯劑。
無有注效。外來不測之禍。時又助發
頹瀾。煎悶情私。無可形喩。裏許一
身。坐在表裏交攻之地。可謂魂不付
足不履。兒子商山行。尙未見歸。所觀甚
無力。而只曠費忙馳。果亦無事戾返
耶。婦阿雖無顯病。然憂患中。
晝宿勞勩。殆非脆質可堪。而亦且無
奈何耳。覲行日前對春府。略綽
言之。渠書亦詳言之矣。行與止。只聽其
操縱。雖爲不經語所動。旣有咨且不可
强動也。雖無此箇卜說。近日事。亦無經
營往來之勢。幸或諒恕之也。餘。不宣。
丁巳扐月八日。弟 金基東 奉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