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6월 1일, 金斗煥이 아들 金時潤을 보내는 일 등과 관련하여 奮山 柳淵鱗에게 보낸 편지
1917년 6월 1일에 金斗煥이 아들 金時潤을 보내는 일 등과 관련하여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朴谷이 멀지 않은데도 매번 柳淵鱗이 편지를 먼저 해주는 것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을 표하였다. 또한 柳淵鱗이 보내준 편지를 통해서 柳淵鱗 형제 및 柳淵鱗의 아들, 며느리가 모두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는 柳淵鱗 집안의 다행한 일일 뿐만 아니라 실로 金斗煥 자신 집안의 복이라고 하였다.
金斗煥은 근래 苦海를 겪고 있다고 하였다. 어머님은 회복되지 않고, 아이들도 병 없이 지내는 날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더구나 자신은 머리와 눈에 병이 나고, 4달 동안 경영하였던 것이 때에 임박하여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좋은 상황에서 근심이 없어지는 때를 한 번 만나기가 쉽지 않다며 난감한 마음을 토로하였다. 아들 金時潤을 柳淵鱗의 부탁대로 보낸다고 하였다. 그런데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비로서 매우 부끄럽다고 하면서, 柳淵鱗이 제대로 교육시켜 달라고 부탁하였다. 아직 移秧을 하지 못하고 큰 내에 제방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고, 방문해달라는 柳淵鱗의 요청에 대해서 머리와 눈에 난 병이 완치되고 날씨가 개면 가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金斗煥과 柳淵鱗은 서로 사돈지간이다. 金斗煥의 아들인 金時潤이 全州 柳氏와 혼인하였는데, 全州 柳氏가 柳淵鱗의 딸이다. 金時潤은 柳淵鱗의 막내사위이다. 金斗煥은 본관이 義城으로, 芝村 金邦杰의 冑孫이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