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916년 류회식(柳晦植)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16.4717-20130630.065925700090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회식, 이현모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16
형태사항 크기: 20.4 X 46.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일월 재령이씨 인려후손가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6년 류회식(柳晦植) 서간(書簡)
1916년 1월 20일, 柳晦植이 시대 상황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전하고 곧 방문할 것임을 알리기 위해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이다. 때때로 토론하며 공부를 하는지, 아들은 공부가 늘었는지 관례를 치렀는지 궁금해 하였다. 세상이 뒤집어져 文學을 한 번 쓰고는 버리는 물건같이 보고 이익만을 갈망하는 어찌할 수 없는 세태를 탄식하였다. 상대가 거주하는 무실 근처에 볼일이 있으므로 그곳에도 한번 들를 것임을 알렸다. 泗上의 두 喪事를 한탄하고 大圭의 안부를 물었으며 景斗兄이 옛집으로 돌아온 것을 기뻐하였다.
김정민

상세정보

1916년 1월 20일에 柳晦植이 시대 상황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전하고 곧 방문할 것임을 알리기 위해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
1916년 1월 20일에 柳晦植이 시대 상황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전하고 곧 방문할 것임을 알리기 위해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이다.
두 달은 서쪽에서 한 달은 남쪽에서 저녁이 되면 잘 곳을 찾았는데, 돌아옴에 小孫이 책상 선반에서 한 작은 함을 내었으니 그대의 편지였다고 하였다. 놀라 기뻐서 마음으로 ‘대단하다 친구의 의리여.’라고 외쳤다고 하였다. 편지를 보니 근심스런 처지를 기록함에 가슴 속의 일을 모두 말하며 간절한 마음을 그냥 두지 않았으니 百朋의 큰돈이라 할지라도 어찌 이것에 해당되겠느냐고 하였다. 다만 때를 넘겨 늦게 답장을 쓰는데 3달이 지났고 새해가 되었다고 하였다. 추위가 매서운데 건강하고 다복하게 지내는지 물었다. 형제끼리 멀리 떨어져 지내는 회포를 쇠노한 지경에 견딜 수 있는 바가 아니지만 때때로 風雨속에 상을 나란히 하고서 촛불을 밝히고 한가로이 토론하는 공부를 하는지, 아들은 공부가 많이 늘었을 것인데 이미 관례를 치렀는지 궁금해 하였다. 자신은 갖가지 병으로 쓰러졌고 喪亂으로 꺾였고 쇠약해져 곤란하였고 모양은 또한 말랐고 시력은 혹 맹인 같아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하물며 자신은 귀양살이를 하여 한 배 더 고통스럽다고 하였다. 세상이 장차 저물려 하는데 四方으로 펼치려는 뜻은 이미 게을러졌고 그 꾀하여 하는 것은 다만 아이를 공부 시키고 농부를 훈계하는 몇 건의 일일 뿐인데 그러나 아이는 읽기에 둔하고 밭 갈기에 게으르니 세상에 붙어 살 재미를 붙일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세상이 한번 뒤집어진 이후로 文學을 보기를 한 번 쓰고는 버리는 弁髦같이 보고 功利로 나아가기를 裘葛을 찾듯이 하며 剝陰(剝卦의 陰爻)에서 끝까지 간 것을 잡으려니 上九爻의 먹지 못하는 과실[不食之果]이 어디에 붙어 있겠느냐고 탄식하였다. 이른바 나로부터 선후를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니 다만 詩人의 탄식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근래에 를 찾아갈 일이 있어 한번 나들이할 것 같은데, 蘿는 무실과의 거리가 하루아침 거리도 되지 않으니 어찌 지름길로 돌아가 버리며 들러보지 않을 이치가 있겠느냐고 하였다. 멀리서 쇠약한 얼굴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암담하다고 하였다. 泗上의 兩喪은 더욱 조락하는 탄식을 금할 수 없지만 해도 바뀌어 좇아 탄식한들 무엇 하겠느냐고 하였다. 大圭는 근래 어떤지 궁금해 하였다. 景斗兄이 옛집으로 돌아왔다고 하니 이것이 禮樂을 베풀 일이고 지금 세상 어느 곳에 다시 무릉도원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발급인 柳晦植(1858~1930)은 본이 豊山이고 자가 元燁며 호가 琴下이다. 부는 柳道永이고 안동에 거주하였다. 柳潤文金興洛의 문인이다. 수취인인 李鉉謨(1853~1927)는 본이 載寧이고 자가 景贊이며 호는 仁廬 또는 亦人齋이며 李壽五의 제 3자이다. 寧海 仁良里에서 태어났다. 1896년에 英陽 石保面 做士洞으로 이주하였고 『仁廬處士遺稿』가 전한다.
김정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16년 류회식(柳晦植) 서간(書簡)

二朔於西。一朔于南。抵暮尋巢。則小孫自
案庋。出一小函以進。乃吾景贊書也。因驚喜
自語于心曰。偉乎哉。故人之義也。猶且記存於
患亂之地。道盡胸裏事。懇懇不置。百朋之錫。
奚足以當之哉。但過時稽復。而月三圓而歲且
新矣。謹惟峭寒。
僑中體上。膺休萬禧。瓊雷之懷。非衰境可遣。
時有風雨聯床之約。而討得閒界做了炳燭之
之工耶。胤舍學履。佳篤長久。計已弁矣。承守舊
日影響。而占取山居之樂否。向風馳溯。不任勞禱。
晦植。自來䗫蝎窮之百廢。喪亂以摧沮之。衰
敗以侵困之。形且枯而視或盲。此生緣業。已不堪
其苦。而況南冠之行。尤是一倍愁痛者乎。世將暮
矣。四方之志已倦。而其所猷爲者。只有課兒訓農數
件事耳。然兒鈍於讀。慵懶於耕。無可藉手於寄
世之味。竊惟深藏而自愛者。能免此患耶。粤自潮
海一倒。視文學而弁髦。就功利如裘葛。一綿文物。將
擧窮於剝陰。上九不食之果。于何處寄在也。所謂不自
我先後者。不獨詩人之歎也。近有蘿之緣。似作一番
筇舃。蘿之於水。不崇一朝。豈有徑返。而不顧之理耶。遙
想衰顔。不覺黯黯耳。泗上兩喪。益不禁凋喪之歎。
楡柳改火。追傷何及。大圭近復何如云也。書面俱難。
只有兩地相思而已耶。景斗兄聞首邱故第。此禮樂
之事也。今世何處。更有桃源也。呵呵。餘惟
經體益懋。不備謝狀。伏惟
情照。
丙辰 元月 二十日。情弟 柳晦植 謝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