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9월 6일에 南澔朝가, 상대가 성묘하러 자기 쪽으로 올 때 한 번 만나기를 희망하고 石溪 大祥祭에 星이 갈 것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
1914년 9월 6일에 南澔朝가, 상대가 성묘하러 자기 쪽으로 올 때 한 번 만나기를 희망하고 石溪 大祥祭에 星이 갈 것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이다.
봄에 이별한 뒤로 열기가 지나가고 가을바람이 차가워지는데 마음이 그 쪽으로 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후배들에 대한 지도에 성과가 있으며 茶山과 畓谷의 모든 분들이 건강한지를 물었다. 자신은 여름 이후로 책을 대하였지만 정신이 심난하여 오직 諸老들과 서로 어울리며 지낼 뿐이어서 부끄럽다고 하였다. 그대의 말씀을 듣지 못해 쓸쓸하고 비루하게 되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서리 내리는 때이므로 산소를 돌보려고 오실 일이 있을듯한데 하루 저녁 이야기를 나누어 고루한 자신을 깨우쳐 주기를 바라였다. 石溪의 大祥祭 날이 가까워 감정이 때에 따라 솟을 것이라고 하였고, 星이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갈 것인데 길이 험하여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발급인 南澔朝는 본이 英陽이며 자가 文老이고 南有鎭의 아들이다. 수취인 李鉉謨(1853~1927)는 자가 景贊이고 호는 仁廬 또는 亦人齋이며 李壽五의 제 3자이다. 寧海 仁良里에서 태어났고 1896년에 英陽 石保面 做士洞으로 이주하였다. 『仁廬處士遺稿』가 전한다.
李鉉謨의 『仁廬處士遺稿』권3에 있는 「祭南公澔朝文」에 “예전에 내가 고향에 있을 때 공을 얻어 교유하였다[昔我在故鄕得公爲交也].”라고 하여 仁廬 李鉉謨가 英陽 做士洞으로 이주하기 전에 寧海 仁良에 살 때 그와 교유했었던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당시 南澔朝는 寧海 仁良에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仁廬處士遺稿, 李鉉謨, 2003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