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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이유용(李裕容)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14.4717-20130630.02592570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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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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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유용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14
형태사항 크기: 23 X 4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태자 봉화금씨 매헌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태자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4년 이유용(李裕容) 서간(書簡)
1914년 4월 8일, 이유용이 문집 내용을 수정해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매헌선생의 문집을 간행하는 일을 언급하면서, 문집의 연보 갑자년 4월조에 자신의 선조 이문량이 "李筠軒某"라고 되어있는데, 금보선생의 시권의 소서에는 "李筠軒某丈"이라 되어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선조 이문량이 퇴계 이황과 돈독한 사이이며 다른 제자들과는 나이 차이가 현격히 난다는 것은 『도산집』 속에 상세히 드러난다고 하였다. 지난해에 국보 형에게 자세히 이야기를 하여 바로잡을 것을 청하였지만 아직 고쳐지지 않았다고 하면서, 문집 내용을 개정하여 선조의 유적에 혐의가 없게 해달라고 거듭 부탁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914년 4월 8일, 李裕容이 문집 수정을 요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14년 4월 8일, 李裕容(1874~1923)이 문집 내용을 수정해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 측의 안부에 대해 묻고, 깊은 골짜기로 이거하여 지내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梅軒 琴輔先生의 문집을 간행하는 것은 斯文의 큰 행운인데, 자신의 집안과는 대대로 교분이 있어 문집을 반질하는 명부에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어서 문집 내용 중 연보의 갑자년 4월조에 "與同門諸友陪退溪先生遊淸凉山"의 주각에 "李筠軒某"라고 되어있는데, 琴輔선생의 시권 「淸凉蓮臺寺敬次退溪先生韻」의 小序에는 "先生率諸生入淸凉"이라고 한 아래에 "李筠軒某丈"이라 되어있으니, 이것은 원본을 교감할 때에 우연히 빠뜨려서 생긴 오류라고 하였다. 자신의 선조인 碧梧 李文樑이 退溪 李滉과 매우 돈독한 사이이며 도산급문제현들과는 연령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은 『陶山集』 속에 상세히 드러난다고 하였다. 지난해에 상대방 문중의 國普 형을 만나서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아뢰어 내용을 바로잡을 것을 청하였는데,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아 몹시 개탄스럽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헤아려 빨리 문집 내용을 개정하여서 선조의 유적에 혐의가 없게 해달라고 거듭 부탁하면서 편지 내용을 마쳤다.
이 편지는 「梅軒集」이 간행될 때 李裕容이 자신의 선조 李文樑(1498~1581)과 관련된 내용 중 호칭을 수정해 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것이다. 「매헌집」은 琴輔(1521~1585)의 문집으로 총 2권으로 되어 있는데, 금보는 자가 사임(士任), 琴啓의 손자이다. 1554년(명종 9),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학문연구에 전념하였으며, 퇴계 이황의 제자 가운데 3대 명필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李叔樑 · 吳守盈과 함께 ‘宣城三筆’이라 일컬어졌다.
이 편지의 발급자인 李裕容은 자는 宏甫, 호는 汾庵, 본관은 永川이며, 부친은 李羲肇, 아우는 李裕憲이다. 저서로는 「汾庵遺稿」가 전한다. 이유용이 언급한 碧梧先祖는 바로 李文樑(1498~1581)인데, 자는 大成, 호는 碧梧, 부는 琴賢輔, 平陵道察訪을 역임하였으며, 이황과 절친하였고 문장이 뛰어났다. 그리고 내용에서 언급된 國普 형은 바로 琴東烈(1872~1945)의 字인데, 호는 醒山이고 琴儀의 후손이다. 이황 문하의 세 명필 중 한 사람인 琴輔의 맥을 이은 명필가이며, 「한양가」를 비롯한 많은 유묵과 저서 「醒山遺稿」가 전한다.
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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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914년 이유용(李裕容) 서간(書簡)

伏惟淸和
僉體動引崇衛。仰溸區區。世下。搬棲
深谷。苟保淟涊。有何足奉浼於相愛
之地耶。先梅軒先生遺文。鋟梓壽
傳。當日警咳崇範。闡揮悠久。斯文之幸
大矣。而以鄙家忝在世分之後。存錄於頒
帙之列。盥手奉玩。益不勝高山景行之
忱。而竊有所仰控私悃者。大集中年譜
甲子條四月。與同門諸友陪退溪先生遊
淸凉山註脚。李筠軒某。詩卷淸凉蓮臺
寺敬次退溪先生韻。小敍中先生率諸
生入淸凉下。因錄李筠軒某丈云云。此必由
於校勘原本時。偶失照管。未得致精致詳
故也。我碧梧先祖之於老先生。事契甚
重。陶山及門諸賢之於我碧梧先祖。年齒
絶越。此箇公案。詳在於陶山集中。僉座以爲未之詳而錯之。是
無其理也。有其詳而偶有失。則是恐不免不審大事之責矣。往
年對尊門國普兄。詳陳此箇節拍。
冀有改板釐正之擧。而使先先生完
粹遺集。以就安穩
於廣傳之日。而鄙家
奉受冊子。亦將聽
命左右計矣。尙今
未至一暇究善。殊覺慨
然。伏願僉尊諒此事
實。從速改正。俾免虧欠
於衛先之誠。是爲望幸。
而若因此而始終膠固。則鄙
家不敢以嫌碍祖先之蹟。
尊閣於椅几之上矣。幸
千萬恕諒。以圖從實善
改之策。如何如何。餘不備。上
候禮。伏惟
僉照。
甲寅 四月 初八日。世下 李裕容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