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12월 29일에 李鉉埰가 陶山及門錄과 관련한 사안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전하기 위해 族兄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
1913년 12월 29일 歲暮에 族弟 李鉉埰가 당시 세태와 陶山及門錄과 관련한 사안에 대한 자신의 한탄스러운 심정을 전하기 위해 族兄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의 歲暮에 무한히 가라앉은 심정을 말하고, 새해가 되면 나이가 쉰두 살이 되는데 漢나라 孔融의 탄식과 완전히 부합한다고 하면서 漢나라 劉向을 모범을 본받지 못함을 한탄스러워 하였다. 그리고 세태가 과거의 유풍이 씻은 듯이 사라져 이를 돌이키지 못하는 데 대해 스스로를 자책하였다. 이전에 族兄 李鉉謨가 좌중에서 이러한 시대적 문제를 고민하며 주선하는 것을 목격하고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고 하면서 陶山及門錄에 인명을 함부로 추가하는 일에 대해 한탄하였다. 새해 건강하기를 바라며 김 한 첩을 보낸다고 하였다.
발급인인 李鉉埰(1863~1922)는 본이 載寧이고 자가 舜翼이며 호는 石可軒이다. 李秀榮의 손자이고 英陽 石保面 院里에 거주하였다. 수취인인 李鉉謨(1853~1927)는 이현채의 족형으로 자가 景贊이고 호는 仁廬 또는 亦人齋이며 李壽五의 제 3자이다. 寧海 仁良里에서 태어났다. 1896년에 英陽 石保面 做士洞으로 이주하였고 『仁廬處士遺稿』가 전한다. 『仁廬處士遺稿』권2의 「答族弟舜翼 鉉埰 甲寅」은 본 서간에 대한 답신이다.
본 서간은 앞부분이 탈락되었는데 서두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仁廬處士遺稿, 李鉉謨, 2003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