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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이수승(李壽昇)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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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수승, 이현모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작성시기 1911
형태사항 크기: 24.3 X 51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일월 재령이씨 인려후손가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1년 이수승(李壽昇) 서간(書簡)
1911년 1월 1일, 族叔 李壽昇做士洞에 거주하는 族從 李鉉謨가 새해에 보낸 편지와 시를 받고 고마움을 전한 편지이다. 새해에 편지를 받은 기쁨을 전하고 아이의 병이 3개월 동안 지연되어 책을 볼 여유가 전혀 없는 상황을 전하였다. 상대가 먼저 보낸 편지에서 허송한 60년 세월을 언급한 사실을 지적하며 놀라워하였다. 상대가 자신을 치켜세워 ‘한가한 중에 공부를 하셨다.’고 한 것은 실질과 다름을 지적했다. 지어 보낸「先集重印詩」에 대해 평하기를 공력이 쌓여 절로 意趣가 원활하게 되었다고 칭찬하였다.
김정민

상세정보

1911년 1월 1일에 族叔 李壽昇이, 받은 편지와 詩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族從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
1911년 1월 1일에 族叔 李壽昇做士洞에 거주하는 族從 李鉉謨가 새해에 보낸 편지와 시를 받고 고마움을 전한 편지이다.
해와 달과 시가 새로 시작하는 새해가 되었는데 뜻밖에 편지를 받은 기쁨을 말하고 자신은 타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다만 아이의 병이 3개월 동안 지연되어 애를 태우고 있어 책을 볼 여유가 전혀 없다고 하였다. 이현모가 먼저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허송한 60년 세월을 언급하였으므로 이에 대해 그의 나이가 58년이나 되었음을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이현모가 자신을 치켜세워 ‘한가한 중에 공부를 하셨다.’고 한 것은 진실로 부화한 꾸미는 말에 가까워 실질과 다르다고 하였다. 이현모가 지어 보낸「先集重印詩」에 대해 평하기를 意趣가 圓活한 것은 공력이 쌓여 절로 된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발급인인 李壽昇(1854~1913)은 본이 載寧이다. 자가 德玄, 호가 蒼廬이며 수취인인 이현모에게 족숙이 된다. 수취인 李鉉謨(1853~1927)는 자가 景贊, 호는 仁廬 또는 亦人齋이며, 李壽五의 제 3자이다. 寧海 仁良里에서 태어나 1896년에 英陽 石保面 做士洞으로 이주하였다. 『仁廬處士遺稿』가 전한다.
이현모가 보낸 편지는 『仁廬處士遺稿』권2에 실려 있는 「與族叔德玄 壽昇 辛亥」이다.
仁廬處士遺稿, 李鉉謨, 2003
김정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11년 이수승(李壽昇) 서간(書簡)

做山 硏几下 謹謝呈。

歲暮懷想。政爾趁衿。昨自無何
獲承手翰。見存滿紙慰諭。警發
之言。無非愛我。深望我厚之意。披
復以還感媿來幷。不知所以報答
也。一夜方踰。已得三始。謹請
靜裏硏經。益茂超勝。芘況佳吉。幸
深慰祝。族從。還于舊廬。復我邦族。不
比寄寓寂寞之日。而但兒病。三
朔彌留。用煎憂思。無餘念暇及於
親近書冊之工。且道合下伎倆。一是
伈俔放倒。虛送好光陰。輥到今五十
八年矣。吾座以爲有閒中用工。則
固近於湯浮假外之稱說。殊恨待我之
不實際耳。先集重印韻。意趣圓活。可驗其眞
積用工。不閒他詩工。而亦自工。甚盛甚盛。今
歲新矣。無靳一顧。如何。餘不備謝。
惟照亮。
辛亥 元月 吉。族從 壽昇 謹謝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