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12월 28일, 柳淵龍이 조카의 혼인을 기뻐하며 새해에 방문하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사돈 李中洛에게 보낸 편지
1911년 12월 28일, 柳淵龍이 조카의 혼인을 기뻐하며 새해에 방문하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사돈 李中洛에게 보낸 편지이다.
혼례로 상대의 德에 심취하고 돌아와 흡족하다고 하였다. 편지를 받고서 정의가 더욱 고착되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면서 기뻐하며 이에 각각의 안부를 물었다. 며느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얼마 전에 막 돌아와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게 되었고 혼주가 되는 동생의 병도 나아가니 경사 때문이라고 하였다. 姪兒는 나아진 것이 별로 없는데 지나치게 추켜세워 말을 한 것은 너무 아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새봄에 다시 찾아갈 것이니 성대하게 상을 차려 대접해 주기를 바라였다.
발급인인 柳淵龍(1864~1943)은 본이 全州이고 자는 聖五이며 호는 一澗이다. 柳定鎬의 아들이다. 수취인인 李中洛(1875~1947)은 본이 載寧이고 자가 宅汝이며 호가 做隱이다. 仁廬 李顯模의 아들이다. 혼인한 사람은 류연룡의 질부로 그의 조카 柳東瀚의 아내이며 이중락의 딸이다.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