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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이종하(李鍾夏)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10.4717-20130630.0103257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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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종하, 류연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10
형태사항 크기: 23.6 X 34
장정: 낱장
수량: 2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0년 이종하(李鍾夏) 서간(書簡)
1910년 9월 18일에 이종하이만도의 자정순국 등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그리워하였는데 국가는 위태롭고 상난을 당한 때임을 말할 것이 있겠냐고 하였다. 이어서 상중에 있는 상대가 건승한지, 그 아들은 외가에서 돌아 왔는지, 손녀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이만도께서는 큰 절개를 지켜 우리 사림의 영광이라 할 수 있지만 그가 위태로워진 상황은 탄식스럽다고 하였다. 이종하 자신은 집이 가난하여 갈수록 형편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과 덕첨이 손자를 잃은 상황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김효심

상세정보

1910년 9월 18일, 이종하이만도의 자정순국 등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
1910년 9월 18일에 石皓 李鍾夏(1839~1916)가 響山 李晩燾의 자정순국 등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서 늘 서글프고 그리워하였는데 더구나 국가는 위태롭고 정이 두터운 이는 喪難을 당한 때임에랴 말할 것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이어, 깊은 가을에 喪中에 있는 상대가 건승한지, 아드님은 그 어머니를 모시고 祝庭(외가)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미 돌아왔는지, 손녀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響山 令公께서 큰 절개를 이루셨으니 공적인 견지에서는 吾黨이 함께 영광되지만 사적인 견지에서는 위태롭게 되었다고 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둠 속을 헤매는 탄식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더구나 평소 響山을 아버지처럼 섬기던 상대의 입장에서는 공적인 견지에서 사적인 슬픔을 버리지 못할까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殉國烈士 李晩燾와 石隱 柳基鎬는 서로 사돈지간이다. 李晩燾의 딸인 眞城李氏柳基鎬의 장남인 奮山 柳淵鱗과 혼인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편지의 수신자는 奮山인 것으로 짐작된다. 李鍾夏 자신은 좁은 집과 가난한 살림에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것이 갈수록 어렵다고 하면서, 난감함을 전하였다. 德瞻 族叔께서 하나 남은 손자마저 잃었으니, 天理가 본래 이런 것이냐며 애통한 심정을 표하였다. 더구나 그 죽은 손자의 재주와 文行은 제법 집안의 기대를 받고 있었는데 이처럼 요절하고 말았으니, 더욱 族叔의 가슴에 쇠못을 박는 일이라고 하였다.
李鍾夏는 자가 禹聲, 본관은 固城으로, 平泉 李{玉+集}의 아들이다. 平地翁 李憲復의 冑孫이다. 안동 座首를 역임하였다. 그의 손녀인 李興羲가 奮山 柳淵鱗의 아들인 半啞 柳顥集에게 시집갔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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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910년 이종하(李鍾夏) 서간(書簡)

朴谷 服座 入納。
平里 服弟 謹狀上。省式謹封。
省式。邈然不嗣音久矣。不得無尋常
悵戀。況家國顚沛之時。情摯喪
難之際乎。恭候深秋
服履動引衛重。允君知奉
慈轎在住祝庭矣。間已返稅。孫嬌
娟娟者。能任其重。而不廢其職事否
響山令公成就大節。以公則吾輩與有
光焉。而以私則吾黨危矣。不得無倀倀
冥行之歎。況平日父事之地。恐不能以
公。而蔑其私也。服弟。杜門屛跡。直一戶居
餘氣。他尙何言。內聚頗有戒慮之痒。日
來似休歇。然斗屋冷節。多口奠接。去益
難堪。莫知其如何得計也。德瞻族叔又喪
其孑孑成就之一孫。天理固如是耶。且化者之才諝文
行。頗有門戶之望。若是驀折。尤爲乃祖之胸肚鐵釘
也。餘。留不盡。伏惟。
服照。
庚戌 菊月 十八日。 服弟 李鍾夏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