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윤2월 26일에 李昌久가 상대의 조카의 죽음을 위로하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
1909년 윤2월 26일에 李昌久가 상대의 조카의 죽음을 위로하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李鉉謨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鉉謨의 조카인 湖村侄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하였다. 자질이 훌륭한 靑年이 꺾였다고 하면서 운명을 탓하며 마음을 잘 조절하기를 바라였다. 자신은 근래 상전벽해의 경우와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하면서 재작년 6월에 仲父의 喪을 만났고 몇 개월이 안 되어 從君을 곡하게 되었고 지난여름에 杜洞 權妹를 곡하였으며, 또 1개월이 못 되어 深洞 從侄이 요절하였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筋力이 점점 위태한 지경으로 가고 또 독감이 심하여 괴롭다고 하였다. 남은 식구는 탈이 없다고 하였다. 다음 달에 한 번 가려고 하지만 기필하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발급인인 李昌久는 본이 驪州이고 자가 應文이다. 부는 李能平이다. 이창구는 仁廬 李鉉謨의 姑從이다. 내용 중의 “湖村侄”은 이현모의 맏형 李鉉成의 장자 李元浩를 가리킨다. 수취인인 李鉉謨(1853~1927)는 자가 景贊이고 호는 仁廬 또는 亦人齋이며 李壽五의 제 3자이다. 寧海 仁良里에서 태어났다. 1896년에 英陽 石保面 做士洞으로 이주하였고 『仁廬處士遺稿』가 전한다.
仁廬處士遺稿, 李鉉謨, 2003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