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11월 20일, 金基東이 안부를 교환하고 忌祭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柳淵鱗에게 보낸 편지
1907년(융희 1) 11월 20일에 東洲 金基東(1874∼1930)이 안부를 교환하고 忌祭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근래 추위가 혹심한 상황에서 柳淵鱗을 생각하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언급하고, 그러한 마음은 柳淵鱗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柳淵鱗 및 그 아들들과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아들(金鍾九)도 보살핌 속에 잘 지내고 있으며, 師友와 공부하면서 계발되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께서 추운 날씨를 맞아서 건강을 상하기 일쑤라고 하였다. 齒痛이나 虛眩으로 고생하시는 등 갖가지 衰病이 빈번히 발작하고 있으므로, 날마다 애를 태운다고 하였다. 이어, 며느리와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水谷의 忌祭에 사고로 인하여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아들을 대신 보내도 되겠느냐고 하면서 양해를 구하였다.
金基東과 柳淵鱗은 서로 사돈지간이다. 金基東의 아들 金鍾九가 全州柳氏와 혼인하였는데, 全州柳氏는 柳淵鱗의 딸이다. 金鍾九는 柳淵鱗의 맏사위이다. 金基東은 본관이 光山으로, 後凋堂 金富弼의 冑孫이다.
김장경